'용접 마이스터' 조만철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


'용접 마이스터' 조만철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


"34년째 용접 불꽃과 씨름

원전 108기 제 손끝 거쳤죠"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 어김없이 능숙하게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손때 묻은 보호장구 위로 선명하게 두 글자가 보였다. ‘정성(精誠)’이다.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겠다는 각오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정성을 담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직접 써넣었다. 34년째 용접 불꽃과 마주하며 비지땀을 흘려온 조만철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사진) 얘기다. 



그는 최대 높이 20m, 폭 5m의 원자력발전소 주기기를 용접하는 국내 최고 기술자다. 두산중공업에서 선정한 용접 마이스터(장인)이기도 하다. 창원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조 차장은 학창시절 배운 용접, 가공, 다듬질 등 다양한 과목 가운데 용접에 매료됐다. “다른 작업은 깎아서 필요 없는 놈을 갖다 버리는 게 일인데 용접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을 쓸모 있게 붙이는 작업이라 주저 없이 택했습니다.” 


손끝을 거쳐간 원전만 108기 

1984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거제조선소에서 처음 용접일을 시작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용접 일을 먼저 시작한 선배들은 뒷모습만 보고도 불량인지 아닌지를 가려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하면 불량이 안 나는지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두께가 6㎜가 넘는 선박용 후판을 이어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용접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용접에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 전압과 전류, 속도다. 이를 조합하는 노하우는 다 다르다.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 얼마나 빠르고 완벽하게 접합하느냐가 관건이다. 조 차장은 “용접을 하고 나면 상처난 자리에 생기는 딱지 같은 슬래그가 생긴다. 슬래그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용접을 마무리할 때까지 최소 5년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용접일이 차츰 손에 익어갈 때쯤 좀 더 정교한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매일 같은 것을 이어붙이다 보니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소에서 만들던 선박과 크기는 비슷하면서 미관까지 고려한 ‘물건’이 뭘까 고민한 끝에 원전 주기기를 택했다. 원전 기기를 제작하는 데는 첨단 기술이 투입되지만 마무리는 용접이다. 현장에서 원자력 기기 공장을 거대한 용접공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이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손끝 기술을 경쟁할 수 있다고 봤다. 


1987년 두산중공업 전신인 한국중공업으로 일터를 옮긴 이후 30년간 108기의 원전 주기기가 그의 손끝을 거쳐갔다. 두산중공업으로 회사가 바뀐 뒤에도 회사에서 납품한 94기를 직접 용접했다. 사실상 한국 원전의 역사를 함께한 셈이다. 




50도 더위와의 싸움… 얼음조끼 입고 용접

이직 초기 늘 하던 용접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위가 그를 괴롭혔다. 원전 주기기를 용접하기 위해서는 120~150도로 예열을 해야 한다. 두께가 30㎝에 달해 곧바로 용접하면 갈라지거나 금이 가면서 크랙(crack)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사우나에서 근육을 이완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설명했다.


여름철이면 원전 주기기의 내부 온도는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하며 흘린 땀을 씻어내야 한다. 조 차장은 “얼음조끼를 껴입어도 더위를 견뎌내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너무 더울 때면 대충 용접봉을 녹여 덮어버릴까 하는 유혹도 생겼다. 하지만 그 파장은 몇 달 뒤 엄청난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작은 실수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치는지 깨닫다 보면 정성스레 용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2015년 원전 100기 출하식 순간을 꼽았다. 당시 그는 신한울 2호기의 핵심설비인 증기발생기를 맡았다. 증기발생기는 원자로에서 가열된 경수를 이용해 증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생산된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전의 효율을 결정짓는다. 보통 증기발생기는 길이 약 20m, 직경 5~6m에 달한다. 조 차장은 “특정 구간은 30㎝를 용접하려면 10일 동안 주야간으로 때워야 가능할 정도로 고난도의 작업”이라고 했다. 


원전은 안전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사후 검사도 치밀하다. 표면결함부터 초음파검사, 방사선투과시험 등 ㎜ 단위로 수차례 검사를 한다. 검사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면 재용접을 위해 최소 1주일, 어떤 경우 한 달이나 공사기간이 밀린다. 두산중공업이 해외 원전 수주에 성공한 주요 요인은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짧은 공기(工期)에 있다. 전체 공사의 30%를 차지하는 용접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원전 설계 등 각종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두산중공업에 제작을 의뢰하는 이유도 두산의 손끝 기술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조 차장의 명성은 자자하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발주 후 품질관리를 위해 창원 공장을 찾을 때도 ‘미스터(Mr.) 조’가 손을 댄 주기기는 살펴보지도 않고 돌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만으로 해외 거래처의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33개의 자격증까지… 마이스터 반열에 오르다

“방사능이 위험하지 않나요? 왜 힘들게 이런 일을 하세요?”


30년간 원전 용접을 하면서 조 차장이 주위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원전=위험’이라는 편견 탓에 괜스레 걱정스런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그는 “원전 주기기를 완제품으로 생산해 국내외에 납품하기 때문에 용접하는 과정은 방사능과 전혀 무관하다”며 “그 어느 작업 환경보다 안전하다”고 자신했다.


오히려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용접 실력으로 두산중공업 최초 ‘마이스터’로 이름을 올렸다. 마이스터는 명인(名人)을 뜻하는 독일어다. 두산중공업 내에서는 최고 기술 전문가를 일컫는 단어다. 회사에서 2014년 11월 처음으로 마이스터 6명을 선정했다. 오랜 경력을 가진 기술 전문가는 많지만 동료가 인정한 장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왕진민 두산중공업 원자력주기기 기술팀장은 “관리자들의 평가 외에도 현장 동료들이 매기는 점수가 마이스터 선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더욱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기뻐했다. 조 차장이 힘들게 장인의 반열에 오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다. 그의 아들 준욱 군은 아버지가 마이스터에 선정됐다는 사실을 곧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준욱 군은 “제가 자랑스러워 하는 분이 멋진 마이스터에 선정돼 친구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글을 올렸다”며 “저도 이렇게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조 차장은 기술 못지않게 이론에도 열정을 쏟았다. 용접기능사 2급, 용접기능장은 물론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자격증을 닥치는 대로 땄다. 용접방법과 발주처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갖추다 보니 어느새 그의 손에 자격증 33개가 쥐어져 있었다. 두산중공업 창원 공장 용접 기능직의 1인당 평균 자격증 개수는 24개다. 조 차장은 마이스터 타이틀에 걸맞게 이를 훨씬 웃도는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를 따르는 후배들은 기술과 함께 조 차장의 마음가짐을 닮고 싶어 한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자신의 보호장구에 조 차장과 마찬가지로 ‘정성’이란 두 글자를 새겨넣은 직원들도 있다. 조 차장은 직장생활이나 인생살이 모두 용접과 같다고 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 동떨어진 것을 이어붙이다 보면 모두가 어우러져 지낼 수 있다”고 웃어보였다.


로봇과의 경쟁도 자신 

용접 분야에도 4차 산업혁명 바람이 일면서 기능직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원자력 공장에 원자로 자동 용접로봇을 도입해 테스트 중이다. 원자로는 핵연료를 분열해 열을 발생시키는 원통형 압력용기로,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설비다. 용접로봇이 활성화되면 협소한 공간에 쪼그려 앉아 일하는 작업자의 안전사고 위험을 줄이고 균일한 용접 품질을 확보해 불량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용접 인력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 차장은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며 “오히려 진짜 기술자가 돋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자신했다. 로봇이 용접에 나서더라도 기계가 투입될 수 없는 고난도 용접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27일 ‘원자력의 날’을 앞두고 조 차장은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2011년만 하더라도 아랍에미리트(UAE)에 들어설 원전에 공급할 APR1400 주기기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에 납품해야 할 AP1000 주기기가 공장에 줄을 잇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원자력 공장의 입지는 많이 쪼그라든 상태다. 


그는 “원전 용접 직원으로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최근 공장 분위기가 가장 많이 처진 것 같다”며 “자식을 키워 대학까지 보낸 일터가 후배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불량 3회면 자격증 박탈… "최고 수준 용접기술자 키워내죠"

2011년 9월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에 ‘용접기술자 양성소’가 마련됐다. 이른바 ‘웰딩 랩(welding lab)’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원전 용접기술자의 기량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공간이다.


설계 수명이 60년인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은 장기간 운전을 견뎌내야 한다. 이를 위해 특수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용접 기술로는 품질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두꺼운 후판으로 된 원자력 기기는 홈이 좁고 깊은 용접이음부를 이어붙여야 해 단기간에 일반 용접사를 숙련된 전문용접사로 탈바꿈시키기 어려웠다.


두산중공업이 일종의 ‘용접 사관학교’인 웰딩 랩을 차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업자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용접 방법 및 용접 장비에 대해 이론 교육을 받는다. 실제 제품과 같은 모양의 시편(試片·테스트피스)에 모의 용접도 한다. 웰딩 랩에는 전문강사와 용접엔지니어, 정비 인원이 상주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원자력공장에서 선발된 우수한 용접 기술자가 멘토 자격으로 이곳을 찾아 현장 용접에서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한다. 조만철 차장도 웰딩 랩의 핵심 멘토 중 한 명이다. 


현장에서 용접 불량을 낸 직원은 가차 없이 이곳에서 재교육을 받는다. 회사 관계자는 “용접 불량을 3회 이상 지적받으면 자격증을 말소하고 웰딩 랩에서 시편 용접부터 다시 배우도록 한다”며 “이곳을 거치면 대한민국 최고 용접기술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창원=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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