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 많은 제주, "필로티(Piloti) 구조가 최적의 대안"


암반 많은 제주,  "필로티(Piloti) 구조가 최적의 대안"


이준혁  건축 칼럼니스트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


 2017년 건축의 이슈는 ‘필로티 구조’였다. 지난 11월 15일 포항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5.4 강진으로 인해 한 빌라의 기둥이 무너지면서 알려진 필로티 구조. 이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게 바로 ‘필로티’다.


출처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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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 일반인들은 ‘필로티’라는 명칭엔 관심이 없었다. 늘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친숙한 구조가 필로티였다.


포항 지진 이후 많은 전문가와 건축 관계자는 필로티 구조의 구조적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필로티 구조를 마치 불량품인 것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금부터 필로티 구조에 대한 마녀사냥에서 벗어나 그 의미를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려 한다.


필로티(Pilotis)는 원래 프랑스어로 건축물을 지지하는 기초 말뚝 또는 기둥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2층 이상의 건물에서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외벽 없이 기둥만으로 떠받치고 지상층(1층)을 개방시킨 구조의 건축물이나 그러한 공법을 통칭한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프랑스 건축가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가 <산업도시(Cité industrielle, 1904)“라는 제안서에서 최초 언급했다.


토니 가르니에 이후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인 르 꼬르뷔지에가 1920년대에 제창한 ‘새로운 건축의 5원칙(Les 5 points d' une architecture nouvelle)’에도 포함된다. 필로티는 5원칙 가운데 첫 번째 원칙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건물로 프랑스 파리 근교(Poissy)의 ‘사보아 주택(Villa Savoye, 1929)’과 필자가 거주하였던 파리 기숙사 촌 내 ‘스위스 파비용(Swiss Pavilion, 1929-33)’을 들 수 있다. 집합주거로는 근대 아파트의 효시가 되는 마르세이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1947-52)’ 등을 꼽을 수 있다.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사보아 주택'. 필로티 구조로 돼 있다. 1929년 작품인 이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기도 하다. ⓒ미디어제주


르 꼬르뷔지에가 필로티 구조를 주장하게 된 이유가 있다. 당시 건축물의 1층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 열기, 벌레 등은 물론이고 프라이버시 때문에 주거 불편이 매우 컸다.


프랑스와 달리 르 꼬르뷔지에가 태어난 스위스의 전통주택은 ‘샬레(Chalet)’라는 목조주택이었다. 전통 샬레는 알프스 기슭의 축산농가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로 일반적으로 3층이며, 1층은 벌레, 습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공간이 아닌 창고로 사용했다. 샬레 2층과 3층이 거실, 주방, 침실 용도로 사용되었다. 르 꼬르뷔지에는 이를 당시 유행하기 시작된 철근콘크리트의 힘으로 1층을 개방하는 필로티 구조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르 꼬르뷔지에는 벽면이 개방된 필로티 구조를 통해 지상층을 이와 같은 문제에서 해방시켰다. 특히 집합주거의 경우 습기가 차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던 공간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쾌적한 공공의 공간(Public space)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나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의 놀이공간이나 주민들의 모임의 장소, 주차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부터 도심지내 주차장확보의 목적으로 이 구조가 재발견 되었다. 현재까지 도시형 생활주택(단지형 연립주택과 다가구, 다세대주택, 원룸형 주택)의 88%이상이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구조를 통해서 지하주차장 공사비가 절감 되었고, 1층 주택의 프라이버시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있었다.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 도심지의 집합주택에는 필로티구조가 경제적인 면이나 공간 활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아파트에 비해 저렴한 도시형 생활주택으로서 필로티 구조를 지닌 이런 건축물은 서민층의 주택보급에 도움이 되었다.


필로티 건축물은 도시 외 지역에서도 많은 장점을 찾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르 꼬르뷔지에의 필로티 건축물들은 주로 전원이나 도심지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경관을 중요시하는 유럽의 도심지내에서 보다 전원에서 파격적인 형태의 필로티 구조의 장점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전원 녹지에 들어선 이 구조는 벌레와 습기, 열기에서 해방됨은 물론이고, 앞마당과 뒷마당을 연결시켜 넓은 외부공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지녔고, 비 오는 날 외부에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계단실 하부 등에 위치한 창고는 전원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비들을 수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시각상으로도 건물로 인해 단절되는 넓은 대지의 연속된 경관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하게 발달된 필로티구조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 불구하고, 기타 구조에 비해 비교적 안정성이 낮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현재 건축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필로티 구조는 위험한 구조다.” 라는 것은 “목구조는 콘크리트 구조보다 튼튼하지 못하니 무조건 콘크리트 구조로 건물을 세워야 된다.”는 논리와 같다.


특히 제주도와 같이 지하 암반이 많은 지역에서는 지하주차장을 확보하지 않아도 됨으로 많은 경제적 이점을 가지며, 특히 한라산과 바다의 조망을 중요시하는 도시 외 지역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많은 장점을 가진다.


전원주택, 펜션 등으로 개발이 한창인 제주도에는 필로티 구조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알제리에 거주할 당시 규모 6.3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2000여명이 사망한 2003년 지진을 겪은 현지인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신발을 신는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큰 지진이 나면 주변의 유리창이 모두 깨지기에 신발 없이는 대피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필자는 요즘도 지진 대피요령으로 우선적으로 신발을 신으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


느량의 건축 이야기

이준혁  칼럼니스트

펜션 '느량' 대표

㈜동명기술공단 알제리 지사장

주 알제리 한국건설협의회 간사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사 Architecte D.P.L.G.

Ecole d'architecture Paris-Lavillette 2,3기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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