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電의 전기 독점 끝내야"


손진석 경제부 기자


경쟁 체제 도입하지 않은 나라 

한국, 멕시코, 이스라엘 3국뿐

"소비자에게 선택권 주는 시스템 만들어야"


    일본의 민간 전철 회사인 도큐(東急)그룹은 신상품을 준비 중이다. 


나주 한전 사옥 출처 koreap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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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정기권과 케이블TV 시청권에 가정용 전기 이용권까지 세 가지를 묶은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철 회사가 왜 전기 이용권을 팔기로 했을까. 올해 4월 일본 정부가 연간 80조원에 이르는 전력 소매 시장을 완전 개방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걷어내자 400개 넘는 업체가 전기 판매업에 뛰어들었다. 소프트뱅크가 통신 요금과 전기 이용료를 합친 상품을 내놓는 등 갖가지 결합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전기 판매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멕시코, 이스라엘 3국뿐이다. 선진국들은 판매 회사별로 차등화된 요금 체계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한전과 같은 국영 기관이 전력 판매를 독점했던 건 전후(戰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당면 과제 때문이었는데, 이런 1차 목표가 달성되면 이후엔 소비자 후생(厚生)을 높이는 데 정책 목표를 둔다. 영국은 1990년부터 전력 판매 민영화를 유도하고 다양한 요금제를 국민이 선택하게 했다. 정부 산하 가스전력시장기구(OFGEM)가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5%가 이런 방식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전의, 한전에 의한, 한전을 위한 전력 수급을 하고 있다. 올여름 뜨거웠던 '전기료 폭탄' 논란은 결국 소비자에게 선택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집에서 잠만 자고 주로 일터에 나가 있는 사람은 기본 요금은 싸되 추가 요금이 비싼 요금제가 구미에 당길 것이다. 더위를 덜 타고 추위에 약한 노년층은 여름에 비싸고 겨울에 싼 요금이 매력적일 수 있다. 가정별 특성에 따라 전기 판매 회사와 요금 체계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열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용도별 차등만 있어서 가정에서는 턱없이 많은 요금을 내고, 산업용 전기는 원가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한전은 10조1657억원의 이익을 남겨 정부에만 3622억원을 배당하는 돈 잔치를 벌였다. 판매 회사가 여럿이었다면 가격 경쟁을 거친 요금 인하를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갔어야 할 막대한 돈을 한전과 정부가 주무른 셈이다. 국내에서 전기요금을 '전기세(稅)'라고 부르는 이유도 선택의 여지 없이 일괄적으로 정부 기관인 한전이 받아가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다양한 회사에서 각양각색의 결합 상품을 이용하게 되면 비로소 전기도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선 대기업들이 전기 판매에 뛰어들면 전기료를 올릴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소수의 대기업만 팔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않고 일본처럼 많게는 수백개 업체를 경쟁시키면 한두 개 기업이 제멋대로 요금 체계를 휘저을 수 없게 된다. 한전이 독차지하는 꿀단지를 나눠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그것만이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전기료 논란을 가라앉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손진석 경제부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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