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너지 인터넷 선점 가능… 정부만 손 뗀다면


'에너지 혁명 2030' 저자 토니 세바 인터뷰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토니 세바(Tony Seba·사진)는 그의 저서 '에너지혁명 2030'에서 다가올 미래 에너지 혁명의 시대를 예견했다. 


토니 세바가 저술한 '에너지혁명 2030'. /조선일보 DB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는 몰락하고 집·회사·공장에서 태양광을 활용, 전기를 직접 만들어 쓴다. 전기를 실어나르는 전봇대는 없어진다. 도로 위의 차는 전기만 있으면 굴러간다. 내가 쓸 에너지는 배터리에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어디에서나 배터리가 있고, 모든 사물이 배터리로 연결되는 'BoT(Battery of Things)'. 세바가 그리는 '에너지 인터넷' 시대에는 에너지가 자유자재로 전환되고 사용도 간편하다. 토니 세바가 지난 8일 조선비즈가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2016 미래에너지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세바는 기조연설과 인터뷰에서 "에너지 인터넷 시대의 핵심은 배터리인데, 한국은 이미 소형 배터리 분야 세계 선두주자"라며 "지금의 제조역량과 기술을 잘 키운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세바는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기존 에너지 기업들을 보호, 파괴적인 혁신과 시장의 흐름을 막고 있다"면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바는 정부와 기업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소극적인 것에 대해 "지금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급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6 미래에너지포럼에서 토니 세바와 김상협 교수가 대담을 하고있는 모습. /조선비즈


발전소 더 이상 짓지 마라


에너지 시장에서 한국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GM의 전기차 '볼트'는 LG화학이 만든 배터리를 사용한다. 한국은 이미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지금의 제조역량만 잘 키우면 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에너지 시장에는 이미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회사들이 있고, 정부가 이들을 보호한다. 혁신을 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발전소도 짓지 말고 더이상 시장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BoT(Battery of Things)' 시대의 핵심은 배터리인데, 한국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배터리 분야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이미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 시장의 선두주자다.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도 소형 배터리 7000개를 붙여서 만든다. 대형 배터리 기술보다는 소형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할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장에 따라 움직이고 생산시설을 갖추느냐의 싸움이 될거다."


곧 전기차·태양광발전 시대

핵심 산업인 배터리 시장서

삼성SDI·LG화학 이미 선두


테슬라 같은 기업 나오려면

화력·원자력 분야 보호 말아야


테슬라 같은 혁신적인 에너지 기업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정부가 화력, 원자력 분야의 기업을 보호하는데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삼성, LG 같은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싶어도 구조상 불가능하다. '에너지 인터넷' 시대에는 자동차나 에너지라는 기존 산업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파괴적인 혁신이 시장에서 일어나려면 기존 산업을 보호해선 안 된다."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이 전기차로 바뀌면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들이 저항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전자 회사들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삼성, LG 같은 회사들이 자동차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도 자동차 회사가 아니지만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계속 시장을 주도할 이유는 없다. 시장이 바뀌면 플레이어(참여자)도 바뀔 수 있고,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서 쓰기만 하면 된다."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정부는 그동안 지나치게 기존 에너지 산업을 보호했다. 한국이 (신재생에너지를) 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많이 하고 있다. 지금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급급할 것이다. 독일은 한국보다 일조량이 부족한데, 전체 에너지 수요의 50%를 태양광발전으로 감당한다. 한국에서 전력수요를 100% 태양광발전으로만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땅은 전체 국토의 1.9%다. 옥상이나 지붕이 아닌 놀고 있는 땅에만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도 50%의 전력수요가 해결된다."


에너지 실험의 테스트베드로서 '제주도'에 대한 소감은?

"미국 캘리포니아는 전력 수요 3분의 1을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한다. 친환경 기술을 실험하고 구현할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실리콘밸리로 기업들이 몰린다. 국가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지만 실행은 시장이 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변화가 밀려올 때까지 기다리는게 아니라 이런 시도가 변화를 만드는거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온실가스 배출권리를 사고 파는 제도)가 기업 입장에서는 고민거리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시장에 변화가 생긴다. 단순히 탄소를 줄인다는 개념이 아니라 배출권 거래가 경제성이 있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화력발전 '0'이라는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 태양광발전시설은 올해만 2배나 늘었다. 민간 기업들이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에너지산업에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면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자리가 없어지는 만큼 신규 창출도 많이 일어난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광부보다 태양광 산업으로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3배나 많다. 어디서 실업이 생길지 예측하고, 관련 기업을 지원하는게 대안은 아니다. 실업자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설성인 조선비즈 기자  편집=최원철
kcontent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