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피지기'가 두려운 이유" -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얼마 전 외신을 검색하다 일본 교통성 홈페이지로 우연히 들어갔습니다. 


 일본 교통성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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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엔 국책연구기관인 일본 교통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해외 건설 분야, 경쟁국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가 있었는데, ‘경쟁국’이란 단어에 흥미를 느껴 다운로드를 받았습니다. 


보고서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건설사의 수주 경쟁력을 분석했습니다. 베트남 정부 관료를 직접 설문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터라 꽤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보고서 요약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베트남 시장에서 한국 건설사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한국 기업은 기술력이 아닌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부분 사업을 수주했다. 앞으로 현지 건설사의 기술이 향상되면 한국의 수주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뛰어난 기술력을 베트남 정부에 알리는 방식으로 마케팅 저변을 확대하자.”


요약 보고서 내용은 크게 놀랍지 않았습니다.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한 터에 중국의 추격을 받는 ‘한국 제조업의 샌드위치 위기론’이 베트남에도 나타날 뿐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깊이 읽어 들어가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은 원청 수주한 사업을 현지 건설사에 싸게 하청을 주는 구조로 연명했다. 한국 건설사의 경쟁력은 건설 현장에 본사 직원을 상주 시켜 하청 업체를 밀착 관리하는 것이다. 베트남 현지 건설사가 하청을 받는 과정에서 원청 기술력까지 확보하게 되면 한국 건설사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일부 중견 건설사가 무경험 저가 수주로 시공 불량 등 문제를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기술력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일본은 기술 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베트남에게) 메리트가 없다. (안정적인) ODA 안건만 하다 보니 기술력이 없다는 오해를 받는다. 값 비싼 장비를 끼워 팔려고 공사비를 부풀린다는 말도 있다.”


일본과 한국, 양국의 장점과 약점을 꿰뚫는 보고서를 보니 일본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두려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한국 되돌아보기’ 열풍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본 국책 연구소가 한국 기업에 대해 이렇게 세심하게 분석한 보고서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 배우기’ 열풍이 분 것은 지난 2010년 부터입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은 물론이고 애플의 아이폰보다 인기를 끌던 때입니다. 한국을 깎아내리기 바빴던 일본 보수 언론도 ‘한국 기업 배우기’ 같은 특집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로부터 5년. 최근 대기업 본사가 많은 도쿄의 미나토구 인근 식당은 모처럼 호황이라고 합니다. 신규 채용이 늘면서 부서 별 회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지금 한국 제조업은 어떻습니까. 글로벌 시장에서 극심한 역풍을 맞고 있고, 신규 채용은 줄어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선 ‘시소(seesaw) 현상’이란 게 있습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한쪽에 불리한 상황이 다른 쪽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각국이 엇비슷한 경쟁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 눈 깜짝할 새 뒤로 밀리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손자병법의 한 구절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탐구해 산업의 활기를 되찾았듯이 한국도 적극적인 일본 ‘지피지기’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은 한 사례 일뿐입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경쟁국에 뒤지지 않으려면 지피지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 아니겠습니까. 

[지난기사] 2015. 09. 08

김명지 기자 maeng@chosunbiz.com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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