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척과 기피제도, 법안 심의에 가져와야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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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척과 기피제도, 법안 심의에 가져와야

2015.07.23


국회 법안심의에서 대부분이 찬성하는데 한두 의원이 반대할 때 그 법안 처리는 어떻게 될까요? 경기에서 선수가 심판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요?

소송에서 사건을 배정받은 판사가 소송당사자와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재판을 맡으면 공정성에 의심을 받습니다. 민사소송법에는 판사가 그런 재판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판사 스스로 맡지 않도록 하고, 그래도 간여한다면 당사자가 판사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제척, 회피, 기피제도입니다.

변호사의 업역과 부딪히거나 겹치는 법안을 낼 때는 국회를 넘기 어렵습니다. 변호사 출신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임위원회는 없습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말을 시작할 때에는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시작하여 의원끼리 서로서로 참 존중합니다. 대다수 의원이 찬성해도 존경하는 의원님 한두 분만 적극으로 반대해도 상임위를 넘기 어렵습니다. 법안 심의에 관행으로 전원 합의를 요구하나 봅니다. 논리 원칙 정의를 떠나 자기 출신이나 발 담고 있는 직역의 이익을 위해 세게 반대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합니다.

어렵사리 상임위를 통과해도 다음에는 법사위를 넘어야 합니다. 법령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한다면서 모든 법령은 법사위를 거쳐야 합니다. 법사위는 반 이상이 변호사 출신입니다. 변호사 영역을 건드리는 법이 법사위를 통과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변호사 영역과 관련되는 법안, 분쟁, 권한 다툼에 자기 출신과 관계없이 공정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05년께였습니다. 정부는 기술사법 개정안에 ‘고도 기술분야의 행정처분에 대하여 기술사가 행정부를 상대로 청구나 심판을 청구하는 대리권’을 기술사의 업무로 넣었습니다. 부처 협의 때 법무부가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법무부는 힘겹게 설득했지만, 얼마 뒤 법제처에서 한칼에 잘렸습니다. 위 일은 변호사는 하기 어려운 일이고, 기술사에게 적합한 일이었습니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는 제도를 없애려고 17대, 18대, 이어 19대 국회에 세 번째 법안이 제출됐습니다. 변호사 출신인 이상민 의원이 대표로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인 제도를 바로 잡자는 것인데 아직 산업통상자원위원회도 건너지 못했습니다. 산업위원회에 소속된 변호사 출신 의원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에서 93.7%가 폐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국회는 막무가내입니다. 문제는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 대부분이 폐지에 찬성하더라도 한두 의원이 반대하면 의결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어떤 법안이든지 한두 의원이 반대하면 통과되지 못합니다. 그 법안이 아무리 옳고 시급하더라도 대책이 없습니다.

변리사법 2조와 8조에 규정된 변리사의 침해소송대리권을 법원이 억지로 인정하지 않기에 변호사와 같이 법정에 나가도록 하는 이른바 ‘공동소송대리법안’을 17대에 이어 18대 국회에 이종혁 의원이 대표 발의했습니다. 여러 상황, 논리, 해외 사례, 중요성, 시급성, 변호사 업무와 연관관계 등 꼼꼼히 설명해도 법사위 심의를 넘지 못하자 이종혁 의원은 심의회에서 외쳤습니다.

“의결해 주십시오. (중략) 저를 존중하는 사람은 이런 의견도 개진했습니다. 싸움을 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집단하고 그것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옳다는 정신으로 싸우다가 1년을 국회의원을 하다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그것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회의에서도 외쳤습니다.

“의결에 부쳐 주십시오. 이때까지 제 할 얘기를 충분하게 했고요. 이때까지 제가 그 논리를 충분히 들었지 않습니까? 국회는 이해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 그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라고 제가 받아들였고요. 그리고 이런저런 공청회가 필요하다, 그런 그것도 저는 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제가 오늘 이것을 주장했던 이유는 이 개정 법률안의 취지가 결코 변호사의 영역을 어떻게 침탈한다거나 혹은 아니면 변리사의 이익이나 이해집단을 옹호해 주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다고 하는 제 나름대로,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정신과 역사관 속에서 제가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 선조는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 했을 정도로 공정에 의심을 받지 않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켕기는 자리를 스스로 피하지 않는다면 법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국회의 법안 심의에도 제척과 기피제도를 도입해야 하겠습니다.  '의결해 달라'는 소리가 언제까지 나와야 할까요? 국회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합니다. 국민이 국회를 기피하지 않게 하려면...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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