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거실→식당…시대에 따라 변하는 주택 구조

건축설계 때 가장 중요한 곳은 여성 공간

 

한 가구의 식탁이 놓인 식당(dining room).

 

 

얼마 전 경기도 파주 교하신도시에서 단독주택을 기획해 시공한 적이 있다.

 

이 주택은 특이하게도 거실이 없다. 1층에는 방 두 개와 주방, 식당(dining room), 욕실, 다용도실 뿐이다. 2층엔 서재 겸 작업실과 방 두 개가 있다. 주택 면적은 151㎡(46평)로 꽤 큰 편이다.

 

20여 년 전에도 비슷했다. 신혼집 첫 빌라 면적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33㎡(10평) 남짓했다. 방 두 개와 주방이 전부였다. 거실은 없었다. 면적이 워낙 작다 보니 거실을 만들 공간이 없어 안방이 거실 기능까지 겸했다.

 

잠깐 오래 전 얘기를 해보자. 어릴 적에는 손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안방으로 모셨다. 그 다음 재떨이를 갖다드렸다.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모든 문제의 해결은 안방에서 이뤄졌다. 물론 주안상이나 식사가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집의 주인은 당연히 집안 가장인 남자 몫이었다. 집에서만큼은 절대 권력이었다. 하지만 도시로 올라와 아파트를 처음 접하고 나서 가족중심의 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다.

 

거실은 가족중심 사회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가족중심제도 하에서는 거실이 가족 모두의 공유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물론 아직까지 거실은 주택 내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방향과 조망성 등을 고려해 좋은 위치를 점한 뒤 주방과 방의 위치가 정해진다.

 

과거 중요도가 높았던 '안방'의 역할을 '거실'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가부장적인 권위를 무너뜨린 것은 바로 아파트 문화다. 아파트는 기존의 가족제도와 문화를 모두 한방에 날려버린 건축물인 것이다.

 

하지만 흐름은 또 바뀌고 있다. 근래 들어 아파트가 최고의 주거기능을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물론 기존 아파트가 대접을 융성하게 받은 데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다른 주택에 비해 구입이 비교적 수월하고 생활이 편리하며, 집을 사서 일정 기간 보유하게 되면 아파트 값이 올라 돈을 벌게 해주는 재테크 기능 등이 그것이다. 즉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이중, 삼중 효과가 있는 것이다.

 

아파트는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에게는 손쉽게 돈을 벌게 해주는 일종의 수단이었다. 아파트를 보유한 가장은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하다 못해 친구를 만나도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던 때가 있을 정도였다.

 

다만 아이의 희생은 감수해야 했다. 15년 전 아파트에 살던 필자는 아랫층에 사는 노총각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곤 했다. 아이들이 온순해 별로 뛰지 않았는데도 오후 10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시끄럽다며 올라오곤 했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 늘 어린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거실보다 주방과 식탁 위치가 여성에게 더 중요해져

이렇게 아파트는 가족중심의 주거문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장은 아파트를 수단으로 기를 펴고 살았고, 아파트를 통해 재테크를 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최근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단독주택 행을 결심하는 세대는 주로 30~40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퇴를 하거나 노후를 보내기 위해 단독이나 전원주택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新)주류가 아파트를 뒤로 하고 단독행을 하는 데는 아파트의 재테크 기능이 다소 떨어진 점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사회구성원과 가족구성원의 중심적인 역할이 여성과 아이들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 설계를 하면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파트야 어차피 건설사에서 짓는대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간파하긴 어렵다. 이에 반해 내 마음대로 짓는 주택의 경우 여성 의견이 상대적으로 남성 의견보다 많이 반영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남편들은 친구나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별로 없다. 요즘 같은 때 손님을 집으로 불러 술상을 차리라고 했다가는 소위 '간 큰 남자'가 될 것이다.

 

주부들은 어떤가. 남편과 아이들이 오전에 집을 비우면 이웃이나 친구를 집으로 불러 차를 마시며 수다를 풀기에 여념이 없다. 거실보다는 식탁에 앉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이렇다 보니 거실보다는 주방과 식탁 위치가 여성들에게 더 중요한 공간이 됐다. 설계를 하다 보면 지식인일수록, 고학력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거실보다는 주방 공간의 위치와 크기를 중요시한다.

 

가장 좋은 위치에 식탁을 먼저 배치하고 거실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독주택에 사는 필자도 거실 소파에 앉는 일은 많지 않다. 가족들과 대화를 하는 공간은 식탁이 놓인 식당(dining room)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조인스랜드 이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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