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재개발·재건축 시행이 실제적으로 어려운 이유"
LH사태에도 공공이 더 잘한다는 정부
주민 요구 수용 역부족, 공무(公務)에 안 맞아
시행사 A 대표는 2000년대 초 서울 도심에서 아파트 부지를 사들였다. 땅 주인은 수백 명. 중요한 땅 주인 B와 어렵사리 매매에 합의한 다음 날, 땅값을 보내려고 은행에 갔더니 B의 계좌가 없었다. B가 계좌를 폐쇄하고 하와이로 여행을 가버린 것이었다. 다급해진 A 대표는 하와이로 날아갔다. B를 찾아내 새 조건으로 다시 설득했다. 건축 과정에서 땅 주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도심 복합개발, 재개발·재건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4공급대책 등에서 공공 주도로 도심 주택 공급에 나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직접 시행까지 하겠다고 한다. 투기 사태로 LH 신뢰가 추락했지만 정부는 29일 서울의 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발표했다. 현 정부는 공공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주 서울 강남과 강북의 주요 재개발·재건축 조합장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공공 주도에 대해서는 첫마디가 “내 집이 아니잖아요”라는 대답이었다. 자기 집을 새로 짓는 조합원과 ‘남의 집’을 지어주는 공공기관은 좋은 집을 만들어 보려는 절실함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우선 분양가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 조합은 제대로 상품을 만들어 제값(일반 분양가)을 받는 게 목표다. 어떻게든 분양가를 높이고 싶어 한다. 친환경 도료, 음식물처리기, 신재생에너지 등 분양가상한제 심사를 받을 때 인상 요소를 찾는다. 반면 공공은 ‘가성비’ 좋게 지어 분양가를 낮추는 쪽에 가깝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 단지는 실내 아이스링크 설치를 검토했다. 국내 최초다. 건설사는 오페라하우스와 6레인 수영장도 제안했다. 주민이 원하는 걸 고민한 결과다. 이렇게 해도 분양가는 상한제 적용을 받아 시세보다 훨씬 낮다. 민간에 맡겨놓으면 분양가를 높여 집값 상승을 초래할 것이란 생각은 오래전부터 현실에 맞지 않는다.
설계도 달라진다. 민간 조합은 새로운 특화설계, 혁신설계를 요구한다. LH는 주로 몇 개 틀을 정해놓은 표준설계를 사용해왔다. 소형 공공아파트를 지어 왔으니 딱히 다양한 설계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재개발·재건축 때 소송도 피해 가기 어려운 걸림돌이다. 조합 설립을 끝낸 C재건축조합에서는 100여 건의 소송이 있었고 일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시공사, 조합원, 비상대책위 등이 복잡하게 얽혀 법정다툼을 벌인다. 조합장은 검찰과 경찰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무혐의로 끝났다. 카카오톡 문자를 보낼 때도 소송 소지가 없는지 변호사에게 자문하기도 한다. 이런 걸 감수하고도 조합원 설득과 사업 추진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내 집’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과 자세를 LH 직원 등 공공에게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공공은 싸고 튼튼하게 짓는 데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과거 ‘주공아파트’는 믿을 만한 아파트로 통했다. 60년 동안 서민주택을 지어 온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도시 서민들에게 값싼 공공주택은 여전히 필요하다. 공공임대, 전세 지원 등 주거복지 분야에 할 일도 많다.
공공과 민간은 역할이 따로 있다. 목표가 다르고 잘하는 게 다르다. 정부의 공공 주도 정책은 공급정책, 부패방지, 주거복지가 뒤섞여 있다. 부패방지는 공공기관 신뢰 추락으로 힘을 잃었다. 민간 조합에 문제가 많다면 실태조사와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된다. 낙후지역 재개발 등은 주거복지 차원에서 공공이 수행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기는 게 순리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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