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족의 ’19세기적' 북한 탈출
[만물상] 러시아 가족의 ’19세기적' 북한 탈출
안용현 논설위원
1970년쯤 김일성대에서 유학한 중국 외교관이 “당시 기숙사 난방이 너무 잘돼 겨울에도 창문을 열었을 정도”라며 “식당 밥 배불리 먹으면서 중국을 북한만큼 잘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그 무렵 중국은 문화대혁명 광풍 속에서 모든 게 엉망이었다. 90년대만 해도 평양 발령을 받은 중국 외교관들은 유일한 혈맹국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북으로 발령 나면 한숨을 쉬고 한국으로 가면 만세를 부른다고 한다.
청진 영사관에서 일한 중국 외교관은 “평양은 그나마 낫다”고 했다. 청진은 병원과 학교가 너무 열악해 가족을 데려갈 수 없다. 교류할 사람은 인근 러시아 영사관 직원 정도다. “2년간 생선 먹으며 도 닦다 왔다”고 했다. 평양 주재 외교관도 2017년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북한 은행의 달러 거래가 막혀 대사관 운영비나 월급을 받으려면 중국까지 나가 현금을 들고 와야 했다. ‘전쟁 날 수 있으니 철수 준비하라’는 북 당국의 협박도 받았다.
북은 작년 1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완전 봉쇄했다. 고립이 오래가면서 평양 외교관과 가족까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다. 외국인 전용 상점에 가도 밀가루·식용유·설탕 같은 기초 식료품조차 없다. 커피 한 병은 30달러, 샴푸는 50달러로 값이 폭등했지만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30달러면 북한에선 큰돈이다. 대동강 구역 문수동에 20여 국 대사관이 모여 있는데 외교관끼리 자녀 옷과 신발 등을 서로 바꿔 입는 지경이다. 물물교환이다. 정전도 자주 일어난다. 최근 체코 대사관은 버티다 못해 공관 운영을 중단했다. 평양의 외국 공관 30여 곳 중 9곳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 주북 러시아 대사관이 소셜미디어에 직원과 가족 8명이 ‘레일 바이크’식 수레를 타고 북·러 국경을 넘는 사진을 공개했다. 철로 위에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수레다. 이들이 평양에서 함북 나선에 도착하는 데만 기차와 차로 34시간 걸렸다. 북·러 열차 운행이 끊겨 국경에선 철길용 수레를 밀어야 했다. 이들은 북한을 벗어나자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철길용 수레는 19세기 유물이다. 지금은 모험 영화에 나오거나 레저용으로 사용한다. 북 최대 우방인 러시아 외교관이 그런 수레에 가족을 태우고 혹한에 두만강을 넘었다면 평양에 남은 다른 외교관들의 생활고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극한 직업'이다. 북 주민들의 고난은 어떻겠나. 누구 때문에 이 생지옥인가.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1/02/27/FZEKGZSDQBE73LTTW4NGDYK6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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