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 공모! 선수도, 심판도 문제다


건축 설계 공모! 선수도, 심판도 문제다


공공건축물 설계 공모 심사 

투명·공정성 점점 잃어 문제 

 

이를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부산서 공정건축연대 출발 

 

건축 설계 시장 병들면 

도시환경 질적 향상 '헛수고'


   공공건축물은 대단한 힘을 갖는다. 실제 한 마을을 매력적인 지역 명소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일본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가 이를 잘 말해 준다. 부산도 공공건축을 통해 얼마든지 도시를 변모할 수 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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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이 주인인 공공건축물. 그렇기에 그 과정이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부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당수 공공건축의 건축설계 심사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부산에서 있었던 A공공건축물의 설계 공모 심사는 그런 점에서 심사과정의 허점과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지목된다. 설계 공모는 설계 개념, 공간, 조형 등의 기본적인 내용을 제안하는 단계이기에, 구조나 설비, 시공 등은 이후 상세설계에서 검토해도 충분하다. 한데 A공공건축물의 경우 설계 문제(디자인)와 기술적인 문제(엔지니어)를 검토하기 위한 심사위원 수가 5대 5로 똑같다. 심사위원 배분이 심사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울을 비롯해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기술 분야 전문가의 비중이 높다. 특히 서울시는 설계 분야만으로 심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참고자료]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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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공공건축물의 설계 공모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당선작의 경우 '설계 공모 심사위원회 운영기준'에 의해 실격(설계 설명서에는 컬러 사용 불가)까지 해당하는 심각한 위반 사항 또는 감점 요인을 갖추었음에도 1위(당선작)가 됐다는 점이다. 기술 분야 심사위원 5명은 이례적으로 이 작품에 모두 만점을 줘, 디자인 분야 4위 작품이 당선작이 됐다.  




올해 부산에서 있었던 B공공건축물의 당선작도 설계 분야보다 기술 분야 점수 배점이 더 높아 당선된 경우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건축설계 분야의 적폐'도 있다. 동명대 건축학과 임성훈 교수는 "심사위원과 응모업체 간 결탁은 오래된 문제고, 또 지속되고 있다. 몇백만 원 단위의 금품이 오가는 것도 공공연한 일이다. 실제로 여러 심사결과를 살펴보면, 심사위원은 특정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단순히 그 업체에 높은 점수를 줄 뿐만 아니라, 경쟁업체의 점수를 낮춰 당선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설계 실력보다는 심사위원에 대한 로비로 결정되는 설계공모가 훨씬 많다는 게 건축계의 중론이다. 특히 공공건축 설계 공모까지 이런 로비가 먹히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공공건축은 우리 사회 총 건축 생산의 20%에 달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각에서는 이게 대한민국 건축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할 정도다. 특정 건축사사무소는 로비 전담 임원이 따로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공공건축물의 핵심은 시민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시설물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건물이 로비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부산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응모자 수가 5팀 내외로 극히 적은 것도 상당수 심사 공정성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함을 알아야 한다. 서울은 응모 신청이 100팀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만큼 부산은 시민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올해 5월 부산에서 몇몇 지역 건축가와 건축학과 교수, 퇴직 공무원 등을 중심으로 공정건축연대가 출발했다. 




이들은 시민에게 가장 좋은 건축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건축 심사가 올바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위원 선정, 계획 위주의 심사, 심사결과 공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중 가장 핵심은 심사 공정성. 공개적이고 투명한 심사 운영은 빼놓을 수 없다. 심사 때 시민이나 전문가들이 참관하는 방식은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이는 발주처의 의지에 달렸다. 최근 부산건축사회는 마을 회관 및 노인정 공개심사 때 마을 주민이 참관하도록 해 호평을 받았다. 서울도 공공건축물 심사에 시민(일반인)이 참관하도록 하고 있다.  


실력으로 경쟁하는 시장이라야 실력 있는 선수들이 육성되는 법이다. 선수(응모자)도 문제고, 심판(심사위원)도 문제가 돼 버린 건축 설계 공모.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실력으로 경쟁하지 않는 시장을 방치한 채 우수한 설계인력, 훌륭한 공공건축이 생성되길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건축 설계 시장이 병들어 있다면, 도시환경의 질적 향상도 헛수고가 될 뿐이다.  


공공건축 설계 시장을 설계 실력으로 경쟁하는 시장으로 바꾸는 일. 이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정달식 문화부장 dosol@busan.com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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