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우려가 현실로] 근로시간 단축도 민간공사 계약 지체상금 예외? 분쟁 '불씨'
[52시간, 우려가 현실로]
근로시간 단축도 민간공사 계약 지체상금 예외? 분쟁 '불씨'
아파트 입주지연, 예고된 '시한폭탄'
지체상금 피하려다 돌관공사, 부실공사 위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 후 20일여일. 전국 아파트 공사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주당 최대 68시간에 맞춰 수주한 민간공사의 준공 일정을 맞추기가 간단치 않다. 공사 기간을 맞추자니 인건비가 늘고 인건비를 더 들이자니 수주단가를 훌쩍 초과한다. 법조계에서도 입주 지연에 따른 분쟁이 '예고된' 시한폭탄이란 얘기가 나온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민간공사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혼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공공공사와 달리 '사인 간 계약'이 구속하는 민간공사는 공사기간 연장이나 공사비 인상 등 근로시간 단축 후속조치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 분양 단지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시공사의 공기 연장과 공사비 부담 증가가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혹서·혹한기, 황사로 작업일수가 축소된 상황에서 공기를 맞추려면 돌관공사를 하게 되고 결국 안전사고와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돌관공사란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단기에 끝내는 공사를 말한다. 기존에 주 61시간을 초과하던 국내 건설현장의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든 만큼 공기를 맞추려면 돌관공사가 불가피하다는 것. 돌관공사는 안전 사고를 부추겨 인명 피해를 야기하고 주택 품질저하로 이어진다. 고스란히 수분양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300인 이상 대형 건설사가 수주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선 벌써부터 입주일을 못 맞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2~3년간 주택시장 호황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착공한 현장 다수가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 차원의 정책적 결단이나 민간공사에 달라진 공사여건을 반영하려면 계약 당사자 간 협의가 필수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공공공사 계약조건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만 민간 영역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신규 계약은 공사단가에 달라진 공사여건을 반영할 수 있지만 기존 계약을 전제로 공사 중인 현장이 문제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건설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사도급계약서 상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유로 공기가 지체되는 경우엔 지체상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지만 자연재해나 전쟁같이 불가항력 사유가 아닌 정부정책 변경에 따른 것도 인정할지가 관건"이라며 "향후 입주 시점에 법적 분쟁의 소지가 농후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공사 입장에선 자신들의 귀책사유가 아닌데 공기가 연장되고 공사비가 늘어난다고 기존 계약대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며 "정비사업 조합 등도 입주가 늦어지는데 따른 이자비용 부담이 있어 추가 부담을 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뿐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각종 민간공사에선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제도 변경에 따른 책임을 오로지 민간 혼자 짊어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발도 만만찮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생산과정에서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생산 비용이 늘어난 부분을 계약 변경으로 적절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희은 기자 머니투데이
케이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