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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잘못이 없다
2018.07.13
최근 히로시마, 오카야마 등 일본 서부에 며칠간 퍼부은 집중호우로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수십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공영 NHK 방송은 지난 일요일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재난 방송을 실시했습니다. 시코쿠 섬의 고치현에는 최고 1,846밀리미터까지 내렸습니다. 일본 기상관측 사상 처음 있는 일로 기상청은 이 비를 ‘헤이세이 30년 7월 호우’로 명명했습니다.강이 범람하여 둑을 허물어 1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흙더미에 매몰된 현장을 경찰, 소방, 자위대가 수색, 구조하는 모습이 시시각각 전해졌습니다. 해상자위대가 단전, 단수로 고통을 겪는 주민들을 함정 안의 욕탕으로 불러 목욕을 하게 해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참 잊어버린 수해 풍경을 선진국 일본이 속수무책, 애처롭게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유럽과 중동 방문 계획도 취소했습니다. 과거 한강 상류에 홍수가 지면 온갖 삶의 파편들이 떠내려왔습니다. 필자가 옛날 경인선 열차를 타고 대학교에 다닐 때 한강 다리에는 철길만이 황토물에 잠길 듯 말 듯 보였습니다. 발을 뻗으면 구두를 탁류에 댈 수도 있었죠. 경안천, 중랑천, 안양천, 양재천 등 한강으로 합치는 지류들은 자주 범람했습니다. 망원동 주민들은 수재가 나자 서울시에 집단소송을 제기해 이기기도 했습니다. 태풍의 비바람으로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 수백, 수천만 평의 농토가 물에 잠기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이 거의 연례행사였다고 기억됩니다. 사라, 매미, 루사…, 아직도 기억이 나는 태풍의 이름들입니다. 1996년 한강 하류의 비무장지대인 김포, 강화 부근의 유도에는 북한 쪽에서 황소가 떠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대형 수재가 발생하면 언론사들은 수재의연금을 경쟁적으로 모금했습니다. 억대의 성금을 내는 기업은 1면에 큰 활자로 소개되었고 기탁자 명단으로 지면이 넘치면 계속 뒷면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수백억 원을 모아 재해대책본부에 전달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치산치수에 공을 들이는 것은 농업국가가 아니더라도 국가 지도자의 덕목입니다. 물을 다스리면 홍수를 막고 가뭄을 덜게 됩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내가 덕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냐”며 애태우는 숙종 같은 임금의 고뇌가 조선왕조실록에 잘 나타납니다.최근 감사원은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한 4대 강 사업의 성과 분석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에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2013년 기준으로 향후 50년 동안 4대 강 사업에 따른 총편익을 6조 6,000억 원, 총비용을 31조여 원으로 분석하고 경제성이 0.21이라고 주장했답니다. 가장 이상한 대목은 홍수를 방지하려고 4대 강 바닥을 대대적으로 준설해서 저수 용량을 키우고 홍수를 방지했는데 홍수가 일어나지 않아 그 편익이 0이라는 명문 서울대의 논리입니다. 오죽하면 정부 관계자가 “분석 대상 기간에 홍수가 없어 홍수 예방 편익이 ‘0원’으로 처리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답니까. 4대 강 사업에 곁들여 늘 트집잡히는 것은 녹조입니다. 4대 강의 보로 용수를 확보하면 유속이 느려지고 특히 가뭄엔 물의 온도가 올라가죠. 질소, 인 등 비료 속에 들어간 화학물질의 농도가 높아져 녹조가 늘어나는 것은 필요악인 셈입니다. 그런 디테일을 막고 4대 강 정비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비료 살포 등 오염원 관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물은 인간이 정한 용도에 맞게 가둬져서 가뭄을 대비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것이니 잘못이 없습니다.이렇게 같은 사안을 놓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감사원이 네 번씩이나 오락가락 조사를 거듭하는 것을 보면 참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전전 대통령의 치산치수 통치행위를 파헤칠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비리 방지에 눈을 부릅떠야 할 것입니다. ‘재생 에너지 3020’, 2030년까지 우리나라 발전량의 재생 에너지 비중을 20퍼센트로 높인다는 구호 아래 산을 깎고 저수지를 쪼개 태양광 패널을 까는데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많으면 한 해 몇 조 원의 피해를 내는 홍수 대책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노 정권은 10년 동안 87조 원이 들어가는 ‘신국가 방재시스템’ 계획도 수립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2년여 기간에 22조 원을 들여 4대 강을 정비했습니다. 이렇게 대형 수재를 덜어줄 초대형 국책사업은, “고속도로를 깔면 부자들만 이용한다.”며 공사 현장에 가로누웠던 잘난 지도자들이 하는 게 아니고 확고한 국가 비전과 집념으로 성취하는 것입니다. 4대 강 사업을 할 때 여러 성당 앞에 ‘강을 자연대로 흐르게 하라’는 식의 현수막이 붙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강이 자연대로 흐르게 하려면 한강 둔치도 허물고 안양천과 양재천, 중랑천 제방도 전부 허물어 물이 원시적으로 흐르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이 오류로 드러날 때 배상을 해야 한다고 미 위스콘신대의 박재광 교수는 밝혔습니다. 도롱뇽을 살리자며 경부선 KTX를 위한 천성산 터널 공사를 막았던 승려 지율이 생각납니다. 2008년 박재완 청와대 수석은 천성산 문제가 2조 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며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라고 비판했습니다. 도롱뇽 서식에는 영향이 없었다고 합니다. 입은 쉬우나 행동으로 국가적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20세기 소련 공산당의 브레즈네프나 흐루쇼프 시대처럼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도 아닌, 할 일을 한 것을 격하하는 듯한 운동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진기합니다. 물은 물리력을 지닌 과학입니다. 4대 강 정비라는 통치 행위에서 '범죄'를 찾았으면 정식으로 기소하고 재판하시든가요. 정치가 과학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물이든 원자력 발전이든 태블릿PC든,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은 용기를 갖고 권력에 흔들리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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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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