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하나 옮기는데도 5개국어 필요한데 "건설현장 외국인 줄여라?"


벽돌 하나 옮기는데도 5개국어 필요한데 "건설현장 외국인 줄여라?"


공사장 덮치는 삽질 정책

힘든 작업, 거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맡아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대리석과 벽돌을 나르는 근로자들의 안전모에는 중국·베트남·러시아 국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현장의 근로자 250명 중 약 200명이 외국인인데,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스티커로 표시한 것이다. 사무실 벽에는 '必修安全守則' 'Essential Safety Rules' 등 한국어·중국어·영어·베트남어·러시아어 등 5개 국어로 '필수 안전 수칙'이 적혀 있었다.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건설 현장 근무를 꺼려 요즘은 '십장' 등 팀장급도 외국인이 맡는 상황"이라며 "외국인 근로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 직원까지 고용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없이는 공사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정부는 일자리 확보 차원에서 외국인 근로자 축소, 내국인 근로자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통역이 필요한 건설현장 - 지난 20일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한국어와 중국어가 병기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모에는 그가 쓰는 언어를 알 수 있도록 해당 국가의 국기 스티커를 부착했다. 중국인인 이 근로자의 안전모에 중국 국기는 제대로 붙어 있지만 태극기는 거꾸로 붙어 있다. /오종찬 기자/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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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3월 말 건설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건설 현장 불법 외국인 억제를 위한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국토교통부는 공사 현장 등에서 불법 외국인 근로자 실태 조사도 벌이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인력 수급 실태를 모르는 탁상 행정"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힘든 작업, 외국인 근로자 비율 높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국내 근로자 중 절반 이상(50.5%)이 50~70대이다. 고령화가 심각하지만 국내 인력만으로는 필요한 인원을 채울 수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숙련공이 태부족이다. 숙련공을 쓰지 않아 발생하는 하자·보수를 하도급 업체가 책임지기 때문에 업체는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숙련공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직종별 외국인 근로자 비중 표


실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80% 정도가 외국인이라는 게 건설업계 추산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은 형틀 목공·철근공·콘크리트공 등 한국인이 꺼리지만 기술을 요하는 일이다. 직종별로 외국인 도입 비중을 보면 형틀 목공(30.7%)이 가장 높고 철근공(19.4%)·콘크리트공(17.8%)이 뒤를 잇는다. 일당이 세지만 최소 3~4년의 경력을 쌓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골조 기능공의 경우 조선족과 한국인은 일당이 19만원으로 같다. 최근 몇 년간 늘어나기 시작한 베트남이나 몽골 출신 근로자도 17만원을 받는다. 기술이 없는 잡부는 국적 상관없이 10만~11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하도급 업체 대표는 "한 장에 40~60㎏짜리 석재를 외벽에 붙이는 석조공은 최소 1년6개월 이상 경험이 필요한데 그만큼 일해본 한국인 자체를 찾기 어렵다"며 "국적 상관없이 기술만 있으면 팀장도 시켜주고, 일당도 하루 25만원씩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필요한 인원보다 턱없이 모자라다. 건설업 취업등록제(H-2 비자)를 통해 배정된 인원은 5만5000명이 전부다. 이 때문에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산업인력공단은 외국인 근로자의 절반인 49.3%가 불법 외국인인 것으로 분석했다.




A골조 업체는 최근 벌금 700만원을 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파견한 직원 80명 중 60명이 외국인인데 이 중 1명이 불법 체류자였기 때문이다. 2016년 여름 공사를 시작한 이 현장은 올해 중순까지 약 2년간 골조 작업을 하기로 돼 있다. 이 업체 대표는 "최소 1년은 꾸준히 일해 줄 기술자가 필요한데 한국 사람들은 일하려 하지 않고, 고용 비자를 받은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는 자꾸 줄어들기 때문에 일감을 놓치지 않으려면 벌금을 내더라도 불법 체류자를 쓸 수밖에 없다"며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 붙어있는 안전수칙. 한국어·중국어·영어·베트남어·러시아어 총 5개 언어로 적혀있다.


"합법적 고용 확대·인센티브 등 고민해야"

외국인 노동자가 늘면서 건설 현장에서 내·외국인 간 갈등도 생기고 있다. 지난 3월 40대 중반의 한 한국인 노동자는 “불법 체류자의 천국이 된 건설 현장을 한국인 노동자에게 돌려달라”며 외국인 노동자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 청원을 올렸다. 정부도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만큼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단속하고, 한국인 건설현장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12월 발표한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에서 “국내 건설 근로자가 비전을 갖고 건설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체불, 불법 하도급 등 법을 위반한 경우 원청 업체인 건설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교육 훈련을 강화해 숙련도가 높은 한국인 노동자를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일이 고된 직종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 현장에서는 한국인 근로자를 찾을 수 없고,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은 외국인 수 역시 부족해 불법 외국인 근로자가 유입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단속만 한다”고 반발한다.


나경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산간 오지 등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운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외국인 취업 비자 발급을 확대해주고, 건설 현장에 청년층이 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다양한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2/2018042201970.html#csidxfab67a0820cfaafb497e719021c36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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