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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마저 대만에 등 돌리려나
2018.02.28
로마 교황청과 중국의 수교가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비슷한 얘기가 여러 차례 흘러나오다가 도중에 흐지부지되곤 했으나 이번에는 양측이 마지막 서명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걸림돌로 작용하던 중국 교구의 ‘주교 임명권’ 문제를 놓고 절충안에 합의가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조만간 교황청을 방문해 교류 문서에 공식 서명할 예정이라는 게 바티칸 소식에 정통한 이탈리아 언론의 최근 보도 내용이다.양측의 수교가 성사된다면 교황청으로서는 13억 인구의 중국 대륙에서 포교활동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는 셈이다. 박해를 피해 지하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구실도 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도 도움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바티칸과의 수교를 통해 얻어지는 상징적인 수확이다. 강성 일변도의 국가 이미지를 온건한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그러나 중국과 외교적으로 대척 관계에 있는 대만으로서는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분위기다. 바티칸과의 수교에서 밀려나는 처지가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마지막 교두보로 남아 있는 바티칸마저 잃게 되는 타격에 직면한 것이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지난주 외교부장(장관) 교체를 포함한 대폭 개각을 단행한 데서도 이러한 위기감이 드러난다. 그렇지 않아도 차이 정부 출범 이후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등 기존의 2개 수교국이 중국으로 외교 노선을 바꾼 뒤끝이다. 대만과 바티칸과의 관계에 틈새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당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식에는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참석하는 등 역대 정부에 걸쳐 서로 우호관계를 확인해 왔다. 지금 정부 들어서도 비슷하다. 2016년 9월 천젠런(陳建仁) 부총통이 바티칸을 방문해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에 참석했으며, 교황청도 쌍십절(雙十節) 국가 경축일에 차이 총통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더욱이 바티칸과 중국과의 접촉이 바티칸 측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성사됐다는 사실이 대만에 있어서는 가슴 아픈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적인 의지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 한국을 방문하는 길에 탑승기가 중국 상공을 지나게 되자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중국인들에 대해 안부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그 뒤에도 “중국 땅을 밟는 첫 교황이 되기를 바란다”며 거듭 중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혔었다. 역대 교황 가운데 누구도 대만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 다분히 정치적인 언급이었다.교황청이 중국과의 관계를 서두르는 데 대한 반발 의견도 만만치는 않다. ‘주교 임명권’에 대한 절충안이 기존 입장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교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임명되는 중국 주교들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번에 그 주장을 거둬들인 배경이 내부 반발에 부딪친 것이다. 마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7억 5,000만 명의 중국 인구를 배제하고는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어렵다”고 이유를 댄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치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종교의 영역에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논리다.중국 교회에서는 주교 임명도 당국이 관할하는 천주교애국회(天主敎愛國會)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종교에 대해서도 ‘중국 성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됐다고 간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황이 임명한 주교들은 오히려 감시 대상일 뿐이다. 전체 1,200만 명에 이르는 중국 가톨릭 신자 중에서 바티칸을 따르는 700만 명 신자들은 지하에 숨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껏 교황청과 중국 정부가 마찰을 빚었던 가장 큰 부분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중국 정부가 주교 후보자를 추천하면 교황이 거부권을 갖는 정도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바티칸이 중국 정부에 굴복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가톨릭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사고 있는 이유다.그 결과가 대만에 있어서는 일방적인 상실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인해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티칸 주재 대만 대사관이 곧바로 폐지되지는 않더라도 문화원 수준으로 격하될 소지가 다분하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 1922년부터 교류가 시작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온 대만과 바티칸과의 관계가 시련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현재 2,300만 인구 가운데 18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가톨릭 신자들도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티칸의 결정이 뒷날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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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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