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한 뒤에야 [신아연]


침묵한 뒤에야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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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한 뒤에야

2018.02.22

저는 요즘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유창하고 조리 있게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 상태를 말하자면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가 표현한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정확히는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게 된 것이지요. 

혼자 살게 된 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시나브로 말을 아낀 지가 5년째입니다. 마치 가진 돈이 점점 줄어들면서 꼭 필요한 것에만 쓰게 되는 검약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돈을 쓰고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듯이, 말할 상대나 가족이 있을 때는 평소의 언어 습관을 알기 어렵습니다. 돈을 펑펑 쓰듯이, 말을 펑펑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함부로 쓰게 되면 낭비와 후회가 따라오듯이, 수다스럽고 소란스러우면 말실수와 시간 낭비를 하게 됩니다. 

용돈을 100만원 씩 쓰다가 절반으로 낮추거나, 평소에 밥을 두 공기씩 먹다가 한 공기로 줄이게 되면 그 허덕임과 허기짐이 오죽할까요? 그러나 점차로 적응하게 되면 실은 전의 상태가 잉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나름으로 생활의 규모가 잡히고, 적은 양의 음식으로도 몸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살이 내려 저절로 질병이 치유되는 경험도 합니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게 된 진계유처럼 말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말고픔’에 허덕였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이혼했나'하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온종일 아무 말을 안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뿐더러 며칠간 한마디를 안 해도 그랬다는 의식 자체가 없습니다. 보통은 이 지경이면 우울증이 생긴다는데, 저는 말을 줄이니 오히려 공허감과 외로움이 잦아들고 내적 공간이 마련되어 내면세계가 여물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침묵 훈련이 되면서 시쳇말로 ‘멘탈 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 다이어트’를 하게 된 후, 침묵의 가치와 함께  ‘일을 줄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안' 시인의 사유를 공감하게 됩니다. 시간을 함부로 보내는 요인 중에 쓸데없는 수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적게 하니, 시간을 그만큼 의미있게 보내게 되더라는 거지요. 

시 <뒤에야>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어떤 연으로 시작해도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즉, 저는 ‘침묵을 지킨 뒤에야’ 어떤 깨달음이 왔지만, 고요히 앉아본 뒤, 일을 줄인 뒤, 문을 닫아건 뒤, 욕심을 줄인 뒤, 정을 쏟은 뒤의 그 어떤 것 중의 하나를 택해도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통찰을 얻게 됩니다. 또 다르게는 자신의 일상 속 깨달음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힘겹게 살을 뺀 뒤에야 치맥과 야식의 해로움을 알았네, 숙면을 취한 뒤에야 근심과 집착을 내려놓아야 함을 알았네’ 이런 연도 가능할 테지요. 

어떤 것이든 깨닫게 되면 지난날의 미숙함과 미성숙에 대한  자괴감이 따라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회한과 후회가 새로워진 마음에 조롱과 흠집을 내려고 고개를 쳐듭니다. 하지만 회한과 자괴감이 두려워서 성장과 성숙을 마다하고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가 적절치는 않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으니까요. 장이 맛있게 익으면 구더기 생각은 저절로 물러갑니다. 오히려 구더기가 있었기에 장맛이 더 좋아질 수 있었다며 구더기의 존재를 유의미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구더기를 재해석하게 되는 것이지요.

진계유가 말하고 있는 고요, 침묵, 절제, 배려, 자비 등,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얻는 일이 쉬울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그러한 것을 성취하고 행한 뒤에, 무지하고 무심했던 예전의 자기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의지적 선택과 결단으로 자신의 내면을 명절 날 칼 벼리듯 벼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예리함이자 동시에 담담한 관조인 것입니다. 저는 ‘침묵’을 지켜감으로써 마음을 벼리게 되었습니다. 침묵을 선택한 것은 지금껏 제가 의지적으로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에야 (然後)

- 진계유(1558~1639)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줄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정을 쏟은 뒤에야
평소의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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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아연

이대 철학과를 나와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 기자를 지내고, 현재는 자유칼럼그룹과 자생한방병원 등에 기고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생명소설『강치의 바다』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비롯,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마르지 않는 붓(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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