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정글과 앙리 루소 [허찬국]


꿈과 정글과 앙리 루소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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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정글과 앙리 루소

2018.02.19

마감이 다가오는 일 때문에 좀 정신없는 설 연휴 중에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에 관한 프로그램을 TV에서 보았습니다. 이 채널은 문화 역사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을 방송해 가끔 시청하는 곳입니다. 지금과 같이 자료가 무궁무진한 인터넷이 없던 시절 화가의 이름을 먼저 들어 알고 나중에 그림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이름을 역사책에서 배우고 나중에 작품을 접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루소의 ‘잠자는 집시’는 화가를 모른 상태에서 그림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원작이 뉴욕의 MoMA(현대미술관)에 소장·전시되고 있어 뉴욕에 갈 일이 있을 때 꼭 찾아보곤 했습니다. 며칠 전에 본 프로그램은 그동안 미술관 등지에서 얻은 단편적 지식의 빈 부분을 채워주어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습니다. 인물이나 풍경이 원근이 무시되어 크고 단순하며, 색 또한 단순합니다. 아마 그게 내가 집시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1844년에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정식으로 화가 수업을 받지 못했던 주말 화가 루소가 세관공무원(Le Douanier, ‘세관원’이라는 별명을 얻음)으로 근무하면서 40세 즈음 발표하기 시작한 초기 그림에 대한 비평가의 비아냥스런 지적과 일치합니다. 

50세가 다 되어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퇴직할 때까지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눈을 가리고 발로 그림을 그린 것 같다”와 같은 평에도 불구하고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기회가 되는 전시회에 계속 출품했습니다.  주류 화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화가들이 참여하는 앙데팡당展에 계속 참여했는데 1889년 한 비평가는 루소의 그림과 또 다른 출품작,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을 뭉뚱그려 “이렇게 기괴한 그림은 처음 봤다”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림 중에 유난히 정글 그림이 많습니다. 집시의 사자와 호랑이가 등장하고 각종 동물, 열대 식물처럼 보이는 상상 속 원색의 화초가 단순한 모양으로 큼지막하게 화폭을 채웁니다. 이런 이미지는 실제보다 상상 속 것들입니다. 나라 밖을 가 본 적이 없었던 루소는 파리의 식물원을 즐겨 찾아 식물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고, 동물들 역시 동물도감이나 박제들을 보면서 익혔다고 합니다. 

열대지방으로의 비싼 여행을 즐길 처지와는 거리가 아주 먼 생을 살았습니다. 6명의 자녀 중 다섯을 잃었고, 일찍 결혼했던 첫 부인이 30대에 죽고 재혼한 부인과도 몇 년 후 사별하는 등 가정의 불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정 때문인지 사기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적은 수입에 늘 곤궁(困窮)한 삶을 살았는데, 퇴직한 후에는 소액의 연금을 받았지만 턱없이 모자라 그림과외, 삽화, 심지어 길거리 바이올린악사로 푼돈을 벌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이런 루소를 도우려 비싼 가격을 주고 자신과 연인의 초상화를 의뢰했습니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1909년의 작품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그 당시 피카소도 루소의 독창성을 높이 사며 그의 그림을 자비로 매입하여 루브르 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말년 가까이 되어 젊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1905년 앙데팡당展에서 그의 사자가 영양을 공격하는 그림이 앙리 마티스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가까이 전시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의 화풍의 한 조류를 일컫는 야수(野獸)파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도 합니다. 그의 1894년 그림 ‘전쟁’은 훗날 큐비즘의 거장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Guernica)’의 전신처럼 보입니다. 달리 등이 속한 초현실주의 화가들도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예술을 향한 열정과 독창성을 인정받을 즈음 1910년 세상을 뜹니다. 가까운 동료 예술가들의 도움도 있고 해서 좀 사정이 나아졌을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잠자는 집시’ 그림에 대해 시인 쟝 콕토는 서 있는 사자를 식민지 확장에 한창이던 유럽 제국주의로, 잠에 빠져있는 아프리카 집시를 이집트로 해석했다고 합니다. 삭막한 사막과 강을 배경으로 밝은 달 아래 곤한 잠에 빠져있는 원색의 복장의 여인, 옆에 서있는 사자는 평화로운 느낌도 줍니다. 루소의 그림에 흔히 붙는 몽환(夢幻)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끝으로 아폴리네르가 써서 조각가 브랑쿠시가 비석에 새긴 루소 추모시 원문 초반부를 불어를 아는 독자들을 위해 첨부합니다. 불어는 모르는데 영어 번역을 통해 생전 별을 보는 시인, 집시, 사자를 그렸듯이 사후에도 영원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화구(畫具)를 보낸다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Inscription pour le tombeau du peintre Henri Rousseau douanier  

Gentil Rousseau tu nous entends
Nous te saluons
Delaunay sa femme Monsieur Queval et moi
Laisse passer nos bagages en franchise à la porte du ciel
Nous t'apporterons des pinceaux des couleurs des toiles
Afin que tes loisirs sacrés dans la lumière réelle
Tu les consacres à peindre comme tu tiras mon portrait
La face des étoiles

    (하략)

Guillaume Apollinaire (1880 - 1918)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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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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