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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도, 미안함도 없는 나라
2018.01.25
대한국민 여러분, 늦었지만 ‘나 먼저 인사하기’를 2018 무술년 올해 우리의 목표, 우리의 결심으로 정하기를 강력히 제안하는 바입니다. 올해도 작년만큼, 재작년만큼, 또 그 전해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짜증 나는 일이 쌓이고 또 쌓이는데 그걸 피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딱히 보이지 않으니 서로 인사라도 잘 하면서 위로하고 ‘힐링’하는 게 어떠냐는 겁니다. 인사의 효용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겁니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인사를 하면 하는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니까 좋고, 받아서 좋고, 좋아하는 걸 보면 또 좋고 그런 게 인사인 것 같습니다.인사를 잘 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인사와 생산성의 정비례 관계’에 대한 계량적 연구도 누군가 했던 모양입디다만 기분이 ‘업’되면 일이 잘 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인사하는) 웃는 낯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이 있고, 서양에는 “(직장에서 인사 나누기가 대강 끝나는) 아침 10시에 기분이 좋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김주대 시인(1965~ )이 쓴 ‘태산이시다’라는 시 한 편 읽으시면 제가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말한 건 보실 필요도 없습니다.<경비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건네셔서 죄송한 마음에 나중에는 내가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마주치기만 하면 얼른 고개를 숙인 거라. 그래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우편함 배달물들을 2층 사무실까지 갖다 주기 시작하시데. 나대로는 또 그게 고맙고 해서 비 오는 날 뜨거운 물 부어 컵라면을 하나 갖다 드렸지 뭐. 그랬더니 글쎄 시골서 올라온 거라며 이튿날 자두를 한 보따리 갖다 주시는 게 아닌가. 하이고, 참말로 갈수록 태산이시라.> ‘먼저 인사하기’와 함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운동’도 필요합니다. 약간이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끼칠 것 같다면 반드시 “미안합니다” 혹은 “죄송합니다”라고 하자는 겁니다. 아니 ‘인사하기’보다 이 운동을 더 강력히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사를 안 한다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시비가 벌어지고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일망정 남에게 피해를 주고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간다면 당한 사람은 하루 종일 기분 나쁜 채 지내게 됩니다. 이처럼 깊은 뜻이 있어도 나의 제안은 빛을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사를 잘 해보려 하지만 상대방은 받아주지 않거나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 맥이 빠질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생깁니다. 먼저 탄 사람에게 인사를 하려면 어느새 고개를 돌려버려 인사하기가 무안해지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짧은 순간이나마 째려보기도 하지요. 그 순간 내가 이미 기분 나빠졌는데, 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그래도 “안녕하세요”란 인사를 하면 마지못해 반응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예 못 들은 척하는 사람도 있으니 고개를 돌리거나 슬쩍 째려보는 건 약과라고 해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작년이나 재작년처럼 듣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가 미안한지, 뭐가 죄송스러운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하는 말입니다. 문 닫고 올라가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올라타고는 먼저 탄 사람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할 뿐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 버스 안에서 백팩을 멘 채 움직이다 옆 사람을 다치게 할 뻔한 사람, 자기 집 안방인 양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 …. 리스트를 만들면 수백 가지도 넘을 겁니다. 미안한 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예 하지도 않을 일들입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사람들이 서로 쳐다보는 것조차도 짜증나고 귀찮아서 인사를 안 하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니라 인사를 안 하는 우리 버릇이 지금 같은 짜증나는 사회를 만든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이나 동창, 동향이 아니면 서로 인사를 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남이고 적이며 피해야 할 사람이 되었으며, 매일 여기저기서 서로 악다구니를 하고 침을 튀기며 삿대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이가 된 게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올라가는 사람 끌어내리고, 밑에서 따라오는 사람 발로 차는 사회가 된 게 아니냐는 겁니다.“미안합니다”나 “죄송합니다”도 마찬가지일 것 같군요. “그깟 일로 미안할 것 같으면 맨날 천날 미안하다고 하며 살아야겠네? 나는 그것보다 더한 것도 참고 살았다”는 생각이 사과할 줄 모르는 사회를 만든 것 같다는 말입니다.아, 이나라 언제면 서로 먼저 인사하는 나라가 될꼬.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자존심 상케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자기도 존중받게 되는 말임을 알게 되는 나라가 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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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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