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의 고독사(孤獨死)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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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의 고독사(孤獨死)

2018.01.23

부음(訃音)은 사람들의 마음을 침울하게 만듭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부음일지라도 죽음의 사연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지난 연말 경남 김해의 한 고시텔에서 고독사(孤獨死)한 노르웨이 입양인 얀 소르코크 씨(43)의 부음은 연민과 함께 씁쓸함을 유발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고독사가 던지는 이미지와 해외 입양이라는 고독사 주인공의 운명이 겹쳐지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알려진 사연만을 보면 얀 소르코크 씨는 4년 동안 한국의 친부모를 찾아 헤매다가 심신이 황폐해졌고, 결국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고독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얀 소르코크 씨가 노르웨이에서 양부모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8세 때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 소르코크 부부에게 입양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젖먹이 때 입양된 케이스와는 달리 성장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그의 심리를 재배했을 수도 있습니다. 

얀 소르코크 씨의 법적 생년월일은 1974년 1월 18이고, 이름은 채성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친부모가 제대로 출생신고를 한 것인지, 고아원에서 그렇게 기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당시 가난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미혼모가 아기를 버리는 일이 많았고 또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이 붙을 정도로 해외 입양이 빈번해서 적당히 기록해서 입양 구비요건만 충족시켰던 일이 허다했을 것 같습니다. 

얀 소르코크 씨는 기록에 의존해서 친부모가 김해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2013년 친부모를 찾겠다고 한국에 들어온 후에도 주로 김해에 살았던 모양입니다. 고시텔 관리인의 얘기로는 작년에는 그가 술을 들고 다녔고 홀로 숙소에 틀어박힐 때가 많았다고 하니 부모 찾기에 너무 지치고 절망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의 고독사가 발견된 것은 작년 12월 21일인데, 검시 결과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고 합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죽으면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니, 입양한 나라나 양부모에 정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양부모의 요구에 의해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43년 삶에서 한국이라는 땅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미국 오레곤의 한 농장에서 해리 홀트와 그의 아내 버사 홀트는 다큐멘터리 필름 ‘G.I. 베이비스’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고아원에서 자라는 전쟁고아의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은 목재회사를 경영했고, 아내는 간호사로 이미 6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 부부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가 용의주도했습니다. 외국 아이를 입양하려면 상하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요로에 알렸고 ‘홀트법안’이 1955년 통과됩니다. 홀트 부부는 8명의 한국 전쟁고아를 오레곤으로 데려갑니다. 

미국 국제홀트아동복지회(Holt International Children's Services)가 출현하여 해외 입양의 문이 열리게 된 계기입니다. 이 8명의 입양이 미국에 알려지면서 많은 미국 가정이 한국 고아의 입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해외 입양은 그 후 여러 기관이 생겨났고 숫자도 늘었습니다. 아이들은 많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 이런 해외 입양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 국가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나마 행운아들이라고 치부했던 적도 있습니다. 

해외 입양아 숫자는 2016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16만 8천여 명입니다. 한국의 가정이나 정부가 돌볼 수 없어 내보낸 아이들이란 걸 염두에 두면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16만 8천개의 곡절이 있는 셈입니다. 이들 중에는 장관도 되는 등 잘 적응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쨌든 국내에서 야기되는 해외 입양의 문제점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입양인들의 정체성 고민입니다. 지금 국내에는 300~500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들어와 핏줄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얀 소르코크 씨처럼 핏줄을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기록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기관이 예산을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나서서 뿌리 찾아주기 정책을 추진할 필요를 말해줍니다. 또한 한국에서 살고 싶은 해외 입양인들도 많지만 법적 조력과 사회인식 때문에 좌절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는 것은 개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정성을 갖고 도와준다면 얀 소로코크 고독사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둘째, 해외 입양을 본질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해외 입양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2016년에도 그 숫자는 330여 명이었습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고 있고 1인당 국민생산(GDP)이 3만 달러에 이르는 한국에서, 그것도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한 국가에서 해외 입양을 계속 내보내야 되느냐는 것은 정책적 고민이자 국민적 과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은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와 이와 관련한 시민 운동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저개발국 아이들을 돕는다는 대의에 기업과 개인 그리고 정부가 합쳐서 수천억 원을 내놓습니다. 이들 국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겠다며 연간 수천 명의 청년들이 위험을 마다 않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로 봉사활동을 떼 지어 갑니다. 

좁은 소견인지 모르겠으나 해외 입양과 해외 봉사 붐은 어울리지 않는 한국의 모습 같습니다. 해외 입양을 중단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이 아이들의 인간적 삶을 위해 고민한다면 개선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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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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