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개발한 세계가 주목한 휴대용 수력발전기
한국인이 개발한 세계가 주목한 휴대용 수력발전기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
텀블러만 한 수력발전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다면?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는 이런 상상을 실현한 휴대용 수력발전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
강원도 홍천에서 만난 박혜린 대표는 “개발팀과 함께 강에서 밤새 실험하다 오는 길”이라면서 휴대용 수력발전기 ‘이노마드 우노’를 보여준다. 강이나 계곡의 흐르는 물에 4시간 30분 정도 담가두면 스마트폰 두 대 반을 충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카누 같은 배에 달아 움직여도 발전기가 돌아간다.
“유속에 의해 날개가 돌면 전기가 만들어져 배터리에 저장됩니다. 작아도 발전소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본체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배터리 모듈은 랜턴이나 블루투스 스피커, 수중 카메라, 빔프로젝터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문 업체들과 함께 개발 중입니다. 현재 제품은 랜턴으로 활용되는데, 한 번 충전하면 130시간 연속 사용할 수 있어요.”
이노마드가 현재 주력하는 시장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다. 판매법인도 미국에 있다. 하지만 박혜린 대표가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떠난 인도 여행에서 찾을 수 있다.
“트레킹을 하다 작은 산간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하고 등유로 불을 밝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니 아홉 살쯤으로 보이는 그 집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방법을 알려주면서 촬영해보라고 하니 동네 친구들을 다 불러 사진을 찍어주더군요. ‘커서 사진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각이 신선했습니다.
‘이 아이가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선물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잠시 더 생각하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디지털카메라를 충전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어느 곳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구촌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20억 명이 이렇게 전기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서 삽니다. 케냐 마사이족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0%로 높지만, 전기가 없어 먼 거리까지 걸어가서 충전한다고 합니다.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일수록 공부나 장사, 정보 획득에 스마트폰을 활용하려는 욕구가 높지만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요. 이 문제를 꼭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너지 원조를 연구했다. 하지만 정책적인 전력 공급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햇빛, 바람, 물 등 주변 자원을 활용해 전기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이후인 2008~2009년 캐나다에서 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창업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이왕이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곳 학생들을 보면서 저 역시 목표만 있다면 배워서라도 의미 있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다
2010년 말부터는 부산의 조류발전 플랜트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13년 8월 퇴사한 그는 “멋진 일을 해보자”고 설득해 같은 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노기환 씨에게 제품 개발을 맡겼다. 이들은 2013년 10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적정기술기반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사무실을 지원받으면서 서울에 올라왔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 연고가 없어 처음에는 사무실과 찜질방에서 먹고 자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박혜린 대표는 기존의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고 어디에서든 주변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에너지 유목민(energy nomad)이라는 의미에서 이노마드(Enomad)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수력발전은 밤이나 흐린 날에는 제 역할을 못하는 태양광 발전에 비해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물은 바람보다 밀도가 800~1000배 높기 때문에 풍력발전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로도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조류발전 관련 일을 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노마드가 처음 개발한 발전기는 지금 모습과 달리 크고 튼튼했다. 박혜린 대표는 이 발전기를 2014년 8월부터 석 달간 청계천에 설치했다. 청계천의 흐르는 물로 전기를 만들어 스마트폰을 충전하게 했더니 20만 명이 몰려들면서 미국 CNN, 중국 CCTV 등 세계 언론도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은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기해했다. 이때 그는 개인용 발전기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개인용 제품을 만들겠다고 전략을 세우니 미국의 캠핑 시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캠핑 인구는 5000만 명에 이릅니다. 매년 여덟 차례씩 캠핑을 떠나 한 번에 닷새에서 열흘씩 머물다 오는 사람들이죠. 유해가스 배출 때문에 미국 캠핑장에서 디젤 발전기 사용이 금지되면서 친환경 발전기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노기환 씨와 함께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횡단하며 수십 군데 캠핑장을 찾아 수요 조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어떤 물건에 충전할지, 어느 정도의 전기가 필요할지, 발전기의 크기와 무게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용량이 크지 않더라도 작고 가벼운 제품을 원하는 그들 수요에 맞추어 완전히 새로 디자인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시행착오
이때 디자인학교 SADI를 졸업한 도보미 씨가 합류해 디자인을 맡았다. 기술 담당 노기환 씨와 디자인 담당 도보미 씨는 논쟁을 거듭하면서 파란색 날개를 접으면 텀블러 모양이 되는 세련된 제품을 만들어냈다.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하고 싶다’는 요구에 맞춰 발전 상태에 따라 빨간색, 하늘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바뀌는 띠도 집어넣었다. 2016년 8월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올려 3억 원 정도(1500대)의 선주문을 받았고, 여러 나라 언론에 소개됐다. 이후로도 계속 주문이 들어와 올해 10월 중순 시판하면서 선주문을 받은 5500대부터 먼저 공급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양산 단계로 들어가니 경험 부족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내구성이 약해서 부러지거나 물이 새고, 금형비가 지나치게 비싸기도 했습니다. 꿈과 의욕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죠. 30년 넘는 경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모셔오니 문제가 싹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회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했지만, 노기환, 도보미 씨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며 최근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떠났습니다. 돌아오리라고 믿지만,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떨어지니 상실감이 크죠.”
11월에도 박혜린 대표의 일정은 빼곡하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디지털기술 회의인 웹 서밋(Web Summit) 전시에 참여한 후, 런던으로 가서 영국 정부 주최로 열리는 국제 조류 에너지 회의(International Tidal Energy Summit)에서 주제 발표를 한다. 프랑스와 스위스 등에서 판매 대행 회사들을 만나고, 인도로 넘어가 세계 기업가정신 회의(Global Entrepreneurship Summit)에 참석할 계획이다. 미국 백악관이 세계의 신생 기업가와 투자자들을 선정해 여는 회의로, 세계적인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제품을 내놓자마자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그는 에너지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때를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유속, 수심, 계절에 따른 알고리즘을 정리했기 때문에 각각의 장소마다 맞춤형 조력 발전기를 제작해줄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지구촌 사람들이 골고루 전기 혜택을 누리도록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어요. 국제기구와 협력할 수도 있겠지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22/20171222009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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