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사살’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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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사살’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2017.12.19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참전 소식은 유럽 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몰아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군의 용맹함에 찬사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밀림 속 베트공들이 한국군을 만나면 교전을 아예 피한다며 한국군의 용맹성을 보도하기를 앞다투기라도 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런 보도 가운데 한 외국 특파원이 맹호(猛虎)부대의 활약상을 밀착 현지보도하면서 격렬한 총격전의 모습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부각된 장면에 바로 직전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전투병들이 주의 깊게 살펴 가다가 중상을 입고 꿈틀거리는 베트공에 다가가더니 여지없이 총기로 ‘확인 사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그 ‘확인 사살’하는 장면을 끔찍하지만 전쟁터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며 크게 마음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지인들이 지나가는 말로 “한국군은 용맹하다”며 극찬하다가는 ‘확인 사살’ 예를 덧붙이곤 하는 것입니다. 왠지 마음에 걸려서 차분히 성찰하여 보니 필자의 생각이 많이 부족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전쟁터지만 적군이 전투력을 상실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곧바로 의료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지침인 것을 깨우쳤습니다. 바로 국제적십자운동의 핵심 정신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20대 후반 나이에도 무척 부끄러웠던 것을 여태 기억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나 봅니다.

조금은 맥을 달리하지만, 스포츠는 Fair play가 기본이며 무조건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스포츠정신이라 듣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를 즐기고 권장하는 것은 근력을 키우는 것보다 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것이 서양문화권에서는 ‘신사도(Gentlemanship)’이며 우리의 ‘선비정신’과 축을 같이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당당하게 스포츠 강국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여 자못 국민적 스포츠정신에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만일 올림픽 경기에서 스포츠 정신을 배제한다면 이는 곧 오락(娛樂)의 범주를 못 벗어날 것입니다. 즉 Fair play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올림픽경기에 우리 모두는 열광하는가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 개인도 그러하지만 공동체인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생활에도 스포츠정신이 마땅히 깃들어 있다고 보며,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생활 풍토를 선도(善導)해야 할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근래 ‘무슨 청산’ 하며 권력의 칼날을 번뜩거리며 휘둘러대는 참담한 모습을 보며, 전투력을 상실한 부상병을 ‘확인 사살’하는 잔혹한 ‘승자의 폭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 통념의 스포츠정신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하계 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렀고, 동계올림픽을 곧 개최하는 나라의 스포츠정신의 수준을 염려스럽게 지켜보는 마음 가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어서 Fair play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스포츠정신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어 ‘승복의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의 행동거지의 근간이 되고, 권력자의 ‘갑질 행위’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정치권의 ‘확인 사살’행위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 절실하여서입니다. 

참고로 1959년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하고 마릴린 먼로,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Some Like It Hot>이 국내에서는 <뜨거운 것이 좋아>로 소개되고, 호킹 박사가 하고 싶은 말은 PC 모니터에서 한 낱말 한 낱말 찾아 문장을 조성하고 엔터(Enter) 키를 누르면 스피커에서 합성된 언어가 나왔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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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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