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충정로, 그리고…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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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충정로, 그리고…

2017.12.13

작년 겨울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촛불(손전등 포함) 군단과 태극기(성조기 포함) 여단이 일촉즉발의 형세로 대치하며 국론 분열이 극에 달했던 12월 이맘때가. 광장 민심의 탄핵 인용 촉구에 맞서 또 다른 광장에서는 원천무효 기각을 외치는 핏발선 열기로 온 나라가 들끓던 지난겨울은 도대체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어요. 이러다 정말 나라가 결딴나나 싶기도 했고요. 정신의학자 융이 이 상황을 보았더라면 ‘집단조현증(集團調絃症)’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을지도 모를 형국이었습니다.

국가 최대 현안이었던 탄핵 심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일단락이 나고 지난 5월 새 정부가 들어서며 조금은 정국의 안개가 걷힌 듯도 했어요. 이후  새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적폐청산’이 이슈로 떠오르며 또다시 정국이 혼란스럽습니다. 촛불혁명의 숨은 함의가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민 화합일 터인데 협치를 제도화해야 할 정치권이 촛불의 의미를 입맛대로 끌어다 쓸 뿐 진정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촛불은 자기를 태우면서 주변을 밝히는 배려와 희생의 상징이 아닐는지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그 무렵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인 SNS 단톡(단체 카톡)방에서는 현안을 둘러싼 이견으로 구성원 간에 서로를 비난하며 깊은 골이 생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부분 분가(分家)로 이어진 골육상쟁은 회원 모두에게 참담함을 안겨주었지요. 내가 회원으로 있는 몇 군데 친목 모임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온라인에서의 갑론을박 와중에 동아리 모임에서 어쩌다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적잖게 민망했습니다. ‘눈’을 맞추기는커녕 애써 ‘눈길’을 피하는 ‘눈치’였어요. SF 영화에 나오는, 적의를 감춘 무표정한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처럼. 

보통사람인 나 역시도 정국의 혼란과 궤를 같이하며 혼미함이 극에 달해 “내 마음 갈 곳을 몰라”였습니다. 정신이 기약 없이 집을 나간 것이에요. 특별히 원한을 산 일도 없는데 낯모르는 사람들한테 끌려가 3박4일 동안 주야장천(晝夜長川)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하며 실컷 울고 싶기도 하며, 술을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는데도 작취미성(昨醉未醒)이랄까, 아니 취생몽사(醉生夢死)하며 흐느적대는 느낌이었어요. 그 판국에 언뜻언뜻 외로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합니다. 주여, 지난겨울은 정녕 힘들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던 날 남산에 있는 ‘서울문학의집’에서 문인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집이 변두리(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위치한 터라 대처에 나갈 일이 있으면 경로와 운송수단을 어떻게 잡을지 항상 신경이 쓰입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가 한 노선밖에 없는데, 시외버스도 그런 시외버스가 없어요. 20~30분 만에 한 대씩 온다니까요, 글쎄. 연착하기도 일쑤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행신역까지 걸어가 용문행 경의중앙선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답니다. 공덕역에서 내려 충정로행 전철로 갈아타면 금방일 거 같아서요. 왜 그런 좋은 방법을 두고 고민했담?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고 여유 있게 충정로역에서 내린 순간 무언가 석연치 않고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대기 시작했어요. 이건 무언가 잘못된 거야! 이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조명 탓인지 아니면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지 눈앞이 침침해요. 남산으로 향하는 출구를 찾느라 이리저리 걸음을 옮겼지만 마음만 바쁠 뿐 출구가 나올 리 없었죠. 그러길 잠시 서서히 ‘감춰진 질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내려야 할 곳인 ‘충무로’를 ‘충정로‘로 착각한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충무로역을 가려면 화정쯤에서 3호선을 탔어야 했어요. 하릴없이 내키는 출구로 나와 급히 택시를 탔는데 그것이 또 역방향인 거예요. 결국 모임에는 40여 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늙수그레한 택시운전사 내비(내비게이션)에도 ‘문학의집’이 잘 뜨질 않아 그 부근에서 또 헤맸답니다. 

세미나가 열리는 홀로 들어서서 말석에 자리하는데 문단의 원로 선생님, 선배님들의 눈총이 여간 따갑지가 않아요. “쟨 항상 늦어.”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래 뵈도 등단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이 계통에서는 음전한 신인이거든요. 참으로 ‘개 같은 날의 오후’였다고요. 모임이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3호선 전철 안에서 ‘조울조울’ 그날 일을 복기했어요. 왜 착각을 했을까? 혹 내가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다른 곳이 아니었는지. 충무로도, 충정로도 아닌 빛고을 충장로가 아니었을까. 내친김에 금남로도 돌아보고.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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