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일자리”, “잡스” “잡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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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일자리”, “잡스” “잡스”

2017.11.27

얼마 전 동네 은행 지점에 들렸습니다. 고객 대기석이 썰렁한 것을 보고, 얼마 전 그 은행 지점에서 보내온 안내문이 생각났습니다. 그날이 그 은행 지점이 마지막으로 영업을 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창구의 행원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나와 마주한 행원이 통합된 근처 지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통합된 지점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여기 행원들 모두 통합지점으로 옮겨갑니까?” 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아닙니다. 서울 시내 지점 곳곳으로 흩어집니다.” 그 행원이 대답했습니다. 

은행 문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4차 산업혁명이 동네 은행지점에 도착한 모양이구나.” 
‘핀테크’ ‘케뱅’ ‘카뱅’ ‘챗봇’ ‘빅데이터’ ‘블록체인’ ‘메기 효과’ ‘비트코인’ 등 신문 경제면은 보통 사람에겐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로 가득합니다. 새로운 은행 형태나 금융 기법이 범람하는 판이니, 은행원들도 정신없을 게 틀림없습니다. 

나는 행원이 깔아준 스마트폰 앱을 사용합니다. 웬만한 송금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보냅니다. 동창회비, 신문 구독료, 때로는 경조비까지. 오래 쓰다 보니 익숙해졌습니다. “이 정도로 앱을 쓰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은행원 1명은 줄어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은행 지점이 없어지고 사람이 줄어드는 건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라고 편하게 생각해 봅니다. 

고객인 나야 가까운 지점으로 발길을 옮기면 되지만 폐쇄된 지점의 행원들은 익숙했던 사무실이 없어지고 출근할 곳이 바뀌었으니 마음이 정말 싱숭생숭할 것입니다. 이들이 당장 해고되는 건 아니겠지만 직장이 얼마나 오래 보장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행원들의 할 일은 점점 줄어들고, 디지털 기반의 금융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새롭게 은행인력으로 채워진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해도 은행의 고용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일자리와 관련해서 최근 나온 두 가지 보고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2017글로벌인적자원보고서’가 있습니다. 조사대상 130개국의 인적자본 활용 능력을 평가했는데, 15~24세의 문해능력(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산술능력에서 한국이 1등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나이 대의 노동참여율은 꼴찌 수준인 120 등입니다. 25~54세 노동 참여율도 101등에 불과합니다. 일할 능력은 있는데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와 통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재) 파이터치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충격’이란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한국에선 향후 20년간 약 124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일자리에서 무려 4.7% 줄어들 수치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있지만 오히려 줄어드는 일자리가 훨씬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말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사회 지도층들이 연설을 할 수 없고, 전문가들이 글도 못 쓰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충고는 하나같이 똑같습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일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10대 청소년 개개인들에게는 좋은 충고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직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답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위에 언급한 두 보고서를 보면, 한국 사회가 일할 능력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일자리 타령입니다. 미국 언론은 매일 떠듭니다.

“잡스(jobs)” “잡스” “잡스.”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잡스’를 입버릇처럼 외쳤습니다. 문재인 한국대통령도 일자리를 목마르게 외칩니다.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일자리에 성공여부가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일자리 숫자가 늘어나야 하고, 그 다음 좋은 일자리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한국의 딜레마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앞서나가지 못하면 한국은 산업경쟁력에서 뒤처질 것이고, 4차 산업혁명이 발전할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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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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