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아리아 VIDEO: Miracle Aria


"객석이 요란한 프랑스어로 들썩거렸다"


도니제티의 너무도 사랑스런 오페라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giment>.


  언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객석이 요란한 프랑스어로 들썩거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출처 Up in the Ai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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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 오페라는 극장이 꽤나 크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층위의 관객들이 몰려드는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극장이어서, 객석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지는 않다. 유럽 명문 오페라하우스들의 꽉 짜인 분위기에 비해 텐션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날은 좀 유별났다. 프랑스에서 넘어 온 듯 한 관객 두 팀이 박스석 몇 개를 전세 낸 듯 독점하고는 장면마다 음악마다 깔깔대며 박수를 쳐댔다. 하긴, 오페라가 프랑스어로 불려지는 ‘끝장나는 희극’이기는 했다. 도니제티의 너무도 사랑스런 오페라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giment>.


(도니제티의 기념비적 명작 <연대의 딸>은 스위스 티롤 지방 배경의 코믹 오페라이다)


오페라는 평화로운 티롤 지방에서 시작된다. 한때 전설적인 위용을 떨쳤던 프랑스의 ‘이탈리아 방면군’이 여전히 스위스 산악 지대에 진을 치고 오스트리아 등과 싸우고 있었다. 참혹한 전쟁이 장기간 계속되니 전쟁 고아도 생겨난다. 어느 날 올망졸망한 눈동자에 통통하고 귀여운 꼬마 어린이가 부대 앞에서 발견된다. 부모가 누군지 알 수도 없다. 결국 프랑스 척탄병 연대의 군인 아저씨들이 이 꼬마 숙녀를 거둬 키운다. 졸지에 수십 명의 아버지와 삼촌들 품안에서 자라게 된 꼬마에게 아저씨들은 마리(Mari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사실은 병영 내에서만 커서 너무 ‘씩씩한’) 숙녀가 되었다. 그러다 주둔지 인근 마을 청년 토니오(Tonio)와 그만 사랑에 빠진다. 상견례(?)를 하러 온 토니오를 보고 군인 아저씨들이 발끈한다. ‘아니, 우리가 그간 마리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디서 소젖이나 짜다온 저런 한심한 면상의 산골 촌놈과 결혼 시킨단 말이냐!’ 순박한 청년 토니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사정해도 군인 아빠들은 요지부동이다. 아아, 멀고도 험한 결혼의 길이여.


결국 토니오가 비장의 한 수를 던진다. 아예 척탄병 연대에 자원입대하기로 한 것이다! 연대의 일원이 되면 설마 그때는 자기를 내치지 않을 거란 계산이다. 확실히 군복입고 나타난 토니오를 보고는 군인 아저씨들의 표정과 태도가 확 달라진다. 신이 난 토니오가 테너 최고음인 ‘하이 C’를 무려 아홉 개나 쏟아내며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한다. “전우들이여(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축제의 날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레제로 테너(테너 음색 중 가장 가볍고 정교한 목소리)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노래로 들어보자.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노래. 이탈리아 제노바 카를로 펠리체 극장 공연)


이 노래에 관해서는 역시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High C의 제왕’으로 불린 것도 이 노래 덕분이며, 영국의 뛰어난 클래식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도 바로 이 아리아 덕분이었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센세이셔널한 노래를 들려주던 청년기의 파바로티가 1967년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연대의 딸>을 부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대륙에서 육성된 클래식 음악계의 원석들을 발굴하고 다듬어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음반과 공연을 기획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만드는 건 전부 영국인들의 몫이다. 그 뛰어난 영국 매니저들 앞에서 파바로티는 역사상 최고의 초고음을 쏟아내며 실로 완벽하게 이 노래를 불렀다. 당장 ‘기적의 아리아’라는 폭발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그날의 실황 녹음기록이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 1967년 영국 런던)


다시 오페라로 돌아가 보자. 현란한 고음을 쏟아내며 마리와의 결혼의지를 불태우던 토니오였지만 뜻밖의 일이 생긴다. 마리의 부모님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멀쩡한 대귀족 가문이었다. 그간 배운 거라곤 어설픈 프랑스 군가와 군대체조 뿐이었던 마리가 이제는 후작 가문의 귀공녀가 되어 그 권세에 걸맞는 품위와 교양을 갖춰야만 한다. 마리는 떠나고 홀로 군에 남은 토니오는 사무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린다. 결국, 토니오는 마리를 만나러 후작부인의 대저택으로 찾아간다. 그간 열심히 군 생활을 해서 장교 계급장도 달고 있었다. 1막에서 아홉 개의 하이 C를 서커스처럼 퍼부어대던 남자였지만, 이번엔 또 다르다. 너무도 진실된 목소리로, 간절히도 마리를 원한다. ‘마리를 사랑합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군에 입대했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노래다.


(도니제티 <연대의 딸> 중 ‘마리를 만나기 위해 Pour me rapprocher de Marie’)


토니오를 노래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미성과 초인적인 고음 기교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런 테너를 흔히 레제로 테너라고 부르는데, 이탈리아어로 leggero는 가볍다는 뜻이다. 가볍고 경묘하여 리릭이나 드라마틱 테너들이 부르기 힘든 정교하고 섬세한 배역을 노래할 수 있는 테너들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레제로 테너라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보다 그들 스타일의 명칭을 쓴다. Tenore di grazia 즉 ‘우아한 테너’다. 실제로 우아한 목소리로 절묘한 보이스 컨트롤과 섬세한 호흡 조절이 가능한 극소수의 테너만이 이 배역을 아름답게 불러낼 수 있다. ‘미성’의 대명사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 또한 그렇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2막 아리아를 다시 한번 들어본다.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

Balc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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