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식물원’ 나들이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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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식물원’ 나들이

2017.11.10

‘자유칼럼그룹’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1박 2일로 부부동반 소풍 행사를 하는데, 이번 가을소풍은 포천 일대를 둘러보는 나들이였습니다. 첫 날은 국립수목원인 ‘광릉수목원’과 화강암 채석장이었던 곳을 문화공원으로 꾸며 놓은 ‘포천 아트밸리’를 거쳐 산정호수를 둘러보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포천시 영북면 우물목길 203에 위치한 ‘평강식물원’을 방문했습니다. 

평강식물원(平康植物園)은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인간의 건강과 평안 회복을 위해 조성한 식물원으로 ‘평강(平康)’은 평안(平安)과 건강(健康)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입니다. 

광릉수목원은 대학 시절부터 자주 방문해온 터라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평강식물원은 오래전부터 와 보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차일피일하다가 처음 하는 방문이라 기대감이 컸습니다. 

날씨가 쾌청해 식물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고, 이번 방문에서 중점적으로 관람한 암석원에서 고산식물들의 특징에 대한 해설사의 자상한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면적이 약 60만㎡(18만 평)가 넘는 평강식물원은 1997년에 당시 일부는 황폐했던 농경지를 매입해 식물 종자 수집과 생육을 통한 조원작업을 시작으로 1999년 8월 10일 개원했습니다. 

2000년에는 세계 14개국 62개 식물원과 종자교류를 시작했고, 식물원의 상징 식물로 정해진 만병초 종자를 200여 종 구입해 증식해오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고산식물의 국내 적응기법 개발을 위해 고사리원과 암석원을 조성했고, 2002년에는 들꽃동산, 습지원, 고층습원, 만병초원 등이 조성되었습니다. 

2005년 수목원으로 등록 후 2006년 5월부터 일반인 관람이 허용되기 시작했으며, 2009년에는 자연 서식지 내에서 보전이 어려운 야생 동식물을 서식지 밖에서 체계적으로 보전하는 환경부의 국가사업인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어 멸종위기 야생식물II급으로 지정된 식물 6종(가시오가피나무, 개병풍, 노랑만병초, 단양쑥부쟁이, 독미나리, 조름나물)을 보전하며 증식하고 있습니다.

식물원에는 12가지 테마 가든이 조성되어 있는데, 각 가든이 나름 특징적인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희귀식물들의 향연!’이라는 별칭을 가진 ‘암석원’에는 고산식물과 바위에 부착해 자라는 다육식물 1,000여 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지에 형성되는 습원으로 꾸며진 ‘고층습원’은 ‘고귀하고 희귀한 매력!’, 고산의 작은 계류(溪流)와 그 주변의 습원을 이용해 만든 ‘고산습원’은 ‘물과 식물의 어울림!’, 그리고 다양한 수생식물을 식재해 수서곤충,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등의 서식처로 조성된 ‘습지원’은 ‘생명의 신비가 가득한 생태보존 공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혼재하는 ‘들꽃동산’은 ‘자연 그대로의 정원!’, 만 가지 병에 쓰인다는 만병초(萬病草) 400여 종이 자라고 있는 ‘만병초원’은 ‘전설을 품고 피어나는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수생식물을 위한 특수용기를 매설해 50여 종의 수련, 초화류, 관목류가 자라고 있는 ‘연못정원’은 ‘한 폭의 수채화 풍경!’, 깊은 계곡 주변에서처럼 이끼가 자라는 환경을 조성한 ‘이끼원’은 ‘녹색빛 이끼가 전하는 휴식 공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자생수목과 야생화를 식재해 조성하고 있는 ‘자생식물원’은 ‘백두대간에 흐드러진 우리 야생화!’, 전국 양치식물의 수집과 증식 연구를 위해 마련된 ‘고사리원’은 ‘싱그러운 만남이 기다리는 곳!’으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흰진달래, 흰용머리, 흰붓꽃 등 순수와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 꽃식물만 모아 전시하고 있는 ‘화이트가든’은 ‘순백의 비밀정원!’, 작은 개울과 함께 잔디가 카펫처럼 펼쳐져 있는 ‘잔디광장’은 ‘잔디카펫을 거니는 여유로움!’이 별칭입니다. 

계절별로 주제를 달리하는 전시회도 개최되고 있는데, 금년 봄에는 ‘봄꽃’을 주제로 4월에 ‘고산식물전시회’와 5월에 ‘만병초전시회’가 개최되었고, 여름철에는 ‘여름 숲’을 주제로 6월에 ‘양치식물(고사리)전시회’, 7월에 ‘약용식물전시회’와 ‘멸종위기식물전시회’ 그리고 8월에는 ‘수생식물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가을 단풍’을 주제로 9~10월에 ‘들국화전시회’와 함께 10~11월에는 ‘특별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겨울왕국’ 불빛나이트를 주제로 12월에 ‘평강 불빛나이트’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전시회에 참석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이번 방문에서 해설을 들으며 관람한 ‘암석원’을 둘러보며 오래전 영국에서 지낼 때 여러 차례 방문했던 런던의 큐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의 암석원(Rock Garden)이 추억으로 떠올랐습니다. 

약 6,000㎡(1,800여 평)에 이르는 암석원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우리나라 고산인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은 물론 히말라야, 알프스, 로키산맥 등에서 수집된 고산식물 1,000여 종이 생육되고 있다고 합니다. 관목들과 함께 어우러져 크고 작은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자라고 있는 고산식물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7~8월에 피는 물매화 꽃을 10월에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늦가을에 방문해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난 광경을 볼 수 없었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년에는 계절별로 방문해 전시회를 관람하며 12가지 테마 가든을 모두 둘러보리라 다짐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게스트칼럼 / 이정원

요양병원에서 삶의 길을 묻다

나에게는 93세로 작고하신 양부님과 87세의 양모님이 생존하고 계십니다. 굳이 양부모님이라고 밝히는 것은 내 나이가 80으로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최소 100세는 넘으셔야 하는데 양아버지와 13세, 어머니와는 7세 차이이고 보니  많은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부모님은 김포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오셨습니다. 양부님은 작년 봄에 발병한 심각한 당뇨병 때문에, 양모님은 19년 전에 시작된 중증 치매 때문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양부님이 퇴원하실 때 주치의가 절대로 집으로는 퇴원하지 말라는 권고에 따라 의사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셨고, 양모님은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말씀도 못하시며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중환자시라 누군가가 반드시 수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양부님 곁에 계시는 게 서로가 마음의 안정을 얻고 치료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으로 2016년 5월에 김포에 있는 요양병원 특실에 두 분을 함께 모셨습니다.

양부님은 고령으로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시어 단장을 짚고 겨우 1층 매점에나 가시는 정도이셨습니다. 보청기를 끼셔도 귀가 어두워 텔레비전 음량을 최대한 올려야 뉴스라도 보지만 어찌 소리가 큰 지 옆방에서 항의까지 한다고 간병인이 귀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자기 의지력을 잃고 새장 속에 갇힌 십자매처럼 모이를 받아먹는 신세가 되셨으니 인생이 참으로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요양병원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되면 아무리 좋은 병원, 좋은 병실에 입원한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폐쇄 공간 속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 합니다. 그 옛날 살림이 궁핍할 적에 한 사람이라도 먹는 입을 줄여야 한다고 늙으신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다 버리고 왔다는 고려장 얘기가 실감 납니다. 고려장이 한국의 민도를 폄하하려는 일제의 황국사관이 날조한 거짓말이라고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요양병원에 갇힌 노인들을 보면서 ‘현대판 고려장’을 떠올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환자들 자신일 거라고 봅니다.

삼시세끼 밥 먹고 바깥출입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거나 우두커니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만 물끄러미 내다보는 신세라면 어디에서 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사람은 단장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해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자유라는 것이 그래서 삶에는 절대적 실존이요 선이며 지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세상과 단절해서는 금은 재화가 길가의 돌보다도 못하게 느껴집니다. 나쁜 일을 하면 감옥에 가두어 세상과 단절시킨 채 고독과 싸우게 하는 것은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여 다시는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못하게 반성의 참회를 하라는 교도 행위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자유를 차단당하는 형벌이 얼마나 인간에게 혹독한 고문인지는 환자가 되어 무심한 창밖을 바라보면 깨닫습니다. 

그 병마와 싸우시던 양아버지께서 병석의 어머니를 두고 지난 6월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밤낮으로 고생하셨고 한편으로는 오래 사시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오셨는데 심장마비로 유언 한마디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새벽 3시에 연락을 받고  택시로 병원으로 가서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는 의사 덕분에 가까스로 임종만 지켜보았습니다. 불쌍한 아내를 홀로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양어머니를 찾아뵙고 보니 남편의 죽음을 모르시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납니다. 

인생무상을 절감합니다. 나이를 먹고 양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지나온 내 과거가 이리 그립고 남은 미래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양병원에 올 때마다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뭉크의 절규를 양부님 눈에서 읽었고, 수잔 헤이워드의 “나는 살고 싶다”는 생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흔드는 양모님의 손가락에서 발견합니다. 

양아버지의 영면을 목격하면서 내가 이제부터 해야 할 우선순위를 손꼽아 봤습니다. 우선 올해로 금혼을 맞았으니 50년 전에 면사포를 쓴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앨범에서 들춰보며 신혼여행 중의 달콤한 추억을 회상해 봐야겠습니다. 다음은 해외여행입니다. 마침 45년 된 대학교 신문사 선후배 동인 모임인 ‘호경회’에서 11월 중순에 라오스를 관광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여자들이 결정하고 남자들은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두 사람 몫으로 3박 5일에 250만 원을 냈습니다. 5명의 회원이 부부동반으로 10명이 가는데 나이가 74세에서 88세까지 연로한 분들이라서 여행 스케줄 중 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 관광지를 비행기로 가기 때문에 경비가 비싸진 것입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평소의 지론을 확대하여 최근 시작한 1시간씩 걷는 건강 보법도 꾸준히 실천해야겠습니다.

나는 양아버지의 죽음과 양어머니의 병상 생활을 지켜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행자는 반려자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평소 “당신을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다시 한 번 큰 소리도 쳐보고 “내 마지막 소원은 당신 무르팍을 베고 눈을 감는 것”이라고 아첨도 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이지만 절대로 사전 증여하지 말고 우리 먼저 쓸 곳에 쓰고 남으면 물려주자고 손가락도 걸어야겠습니다. 재산을 일찍 물려주고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는 이른바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 신세’가 된 경우를 신문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1년 5개월 남짓 요양병원을 드나들며 인생에 대한 많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새장의 새는 아무리 목청을 뽑아도 그건 노래가 아니라 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존’을 터득했습니다. 둘 중에 누군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면 남은 하나는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 생각하며 남은 인생에게 내가 어떻게 마지막 삶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지 그 길을 고민해 봅니다.

필자소개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으로 '코드 55'와 ‘피아노 치는 시인’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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