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왜그’를 ‘리스펙트’하지 마라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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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왜그’를 ‘리스펙트’하지 마라

2017.11.02

젊은이들의 힙합 용어 ‘스왜그(Swag)’가 TV예능프로그램을 장악했습니다.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든 MC는 개그맨, 아나운서, 아이돌가수, 래퍼 등 게스트가 멋있고 쿨해 보이면, 있어 보이면 엄지를 높이 세우며 ‘오, 스왜그 있어!’라고 추어줍니다. MC들이 ‘스왜그’를 말할 타이밍을 놓치면 자막에라도 그 말을 비춰 줍니다. 당장 한번 보세요. 예능 프로그램마다 끝날 때까지 서너 번 이상 ‘스왜그!’가 나오는 걸 확인하게 될 겁니다.

예능 유행어를 일일이 알아 익히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워낙 자주 쓰이고, 나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네이버, 구글, 위키피디아를 찾았지요. 셰익스피어가 ‘헨리 5세’와 ‘한여름 밤의 꿈’에 ‘건들거리다’라는 뜻으로 처음 만들어 썼지만 힙합이 유행하면서 요즘 쓰이는 것처럼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래퍼들이 힙합할 때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계속 건들거려서 그렇게 뜻이 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왜그!’ 뒤에는 ‘리스펙트(Respect)’가 따라 나옵니다. 거의 100%입니다. ‘존경’이라는 말이지요. ‘있어 보이니까  존경해야 해!’ 이런 식으로 연결되나 봅니다. 

그런데, ‘있어 보이는 사람’은 ‘있는 사람’이 아니지요. 있어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있어 보이는 사람’, ‘스왜그 있는 사람’을 존경하라는 건 허풍선이나 사기꾼을 존경하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데로 생각이 미칩니다. 

궁리를 하다 보니 ‘스왜그’가 ‘소신’이나 ‘신념’이라는 단어와 사촌간이겠다라는 짐작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해 전에 대법관을 지낸 분 말씀 때문입니다. 이분은 “요즘 법원에서 ‘실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신’이 차지했다”고 걱정했습니다. 

이분 걱정의 이유는 “실력은 검증할 수 있고 자신이 증명할 수 있지만, 소신은 있어 보이는 것일 뿐 누구도 검증할 수 없고 자신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실력은 법전을 펼쳐 놓고 법리를 따지면 옳고 그름이 증명되나, 소신은 “이게 내 소신이외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고치겠소이다”라고 버티면 그걸로 끝이라는 거지요. 실력은 객관이지만 소신은 주관이어서 자신이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거라는 말이지요. “네 소신이 있으면 다른 이의 소신도 있는 거다. 네 소신만 옳은 거라는 생각이 과연 옳으냐”라는 반론을 받아들일 사람이라면 애초에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사람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건 실력 없는 사람이, 공부를 안 한 사람이, 밤새 판결문을 자신의 힘으로 한 자 한 자 써 보거나 고쳐 보지 않은 사람이 실력 없음을 감추기 위해 , 옳고 그름이 따져지는 걸 피하기 위해 소신을 내세운다는 거지요. 컴퓨터의 ‘Ctrl  + V(복사 기능)’와 검색 기능으로 검찰 공소장과 판례를 적절히 짜깁기한 판결문에 담긴 그 소신 때문에 실력과 소신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구별 않으려는 사람, 실력보다는 소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광하고 위에 말한 예능프로 출연자 못지않은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는 거지요. 

더더욱 걱정스러운 건 이런 소신파가 윗자리로 올라가 자신과 같은 소신파를 끌어올려 실력파는 도태되고 목소리만 큰 허풍선이가, 사기성 짙은 사람이 조직을 장악하고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좌지우지, 그러다가 백성을 고초에 빠트리게 된다는 거지요. 

‘소신파’를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소신파 혹은 신념파가 사회의 책임자, 조직의 지도자, 정치가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이름 높은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일찍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라는 용어로 잘 정리해뒀습니다. 

그는 ‘신념윤리란 어떤 행위가 순수한 신념에서 나왔다면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정당화된다는 태도이며, 책임윤리는 행위의 순수성뿐 아니라 행위가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한 줄만 더 옮깁니다. ‘신념윤리를 믿는 자는 자기 행위가 자기 신념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엄청난 폐해를 유발한다 해도 책임은 자신의 행위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으며, 타인들의 어리석음, 인간을 어리석게 창조한 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책임윤리가는 자기 행위가 잘못됐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목적만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에도 깊은 관심을 갖는다.’ 

‘스왜그’로 시작한 글이 막스 베버까지 너무 멀리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스왜그로만 리스펙트를 받아서는 안 된다. 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실력 있는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실력 있는 사람은 이상만 보지 않고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 조건을 따져보는 사람이다.” 이것으로 제 소신을 밝히고 글을 마칩니다. 

(실력이 있어야 할 자리를 검증 안 되는 소신으로 채운 사람이 법원에만 있겠습니까. 내가 몸담은 직군이나 공직, 민간 기업에도 몇 사람만 더 있으면 ‘넘쳐 난다’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소신파가 다수 있다고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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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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