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명 정규직 전환' 청사진 뒤 가려진 현실

카테고리 없음|2017. 10. 29. 20:06


고용노동부,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천 명 정규직 전환


  고용노동부는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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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전체 41만6천명 중, 상시 지속적 업무를 한다고 판단되는 근로자는 31만6천명. 이중 기간제 교사, 만 60세 정년을 넘긴 자(청소.용역 제외),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직군 등 14만1천명을 제외한 인원입니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는 업무에서도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이를 방관하는 잘못된 고용 관행을 공공부문부터 바로잡겠다는 의지”라고 밝혔습니다.


“저희는 아직 전환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고용부는 지난 7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3개월 동안 853개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해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20만5천명이라는 전환 규모는 이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정해졌습니다. 당장 연말까지 두 달 안에 7만4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정부 발표 후 일부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사례 취재와 실제 정부 발표가 맞는지 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규모가 큰 산하 기관, 공기업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취재하고 싶다'고 의뢰했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습니다. 정부의 큰 포부와는 달리 현장에선 적잖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중앙부처 산하 A 공기업. 이 공기업은 고용노동부의 발표 중 ‘그동안 정책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직종을 반영했다’고 밝힌 수만 명 비정규직 근로자 중 다수가 포함된 곳입니다. 취재를 의뢰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 왔습니다.


“해당 직군의 근로자들은 스마트 기술 도입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직군이다. 아직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데,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지 안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또 다른 부처 산하의 B공공기관도 비슷했습니다.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를 묻자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내부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며 “결정이 안 된 상태에서 언론 취재에 응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연락을 취했던 다른 기관도 “아직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 전환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지방 기관 관계자는 “다른 곳이 어떻게 하는지를 좀 보고 참고 하려고 한다.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다”며 좀 더 솔직한 속내를 보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발표에서 각 기관별 실태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전체 대상이 20만5천명이라고만 밝혔을 뿐 각 기관의 비정규직 중 몇 명을 전환 대상으로 판단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개별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정부의 발표와 현장의 목소리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진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당장 두 달 안에 7만여 명을 전환시키겠단 정부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단 사실입니다.


규모와 속도보단 내실 채운 ‘정규직 전환’ 필요

고용노동부가 ‘우수 사례’로 추천한 마사회의 경우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근무하는  ‘시간제 경마직’ 5천6백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파견직으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두고는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같은 기관 내 비정규직 근로자 안에서도 전환 여부 판단이 다른 셈입니다.


하물며 수백 개의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운영 기준은 천차만별이고, 노사 관계, 임금 기준도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정규직 전환 추진은 녹록하진 않습니다.


예산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정규직 전환으로 늘어날 인건비를 부담하려면 결국 예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단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일률적인 호봉제 편입을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합리적인 임금체계 도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임금체계의 구체적인 정의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예산 부담이 없다 해도 문제가 끝나진 않습니다. 기존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입사 절차와 지원 자격이 달랐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똑같은 처우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기존 정규직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해온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서울시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하자 3~4년차 젊은 정규직 위주로 ‘역차별’을 주장하며 1인 시위와 집회까지 강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정규직의 양보가 없는 정규직 전환은 또 다른 차별과 갈등만 불러올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 하나였습니다. 공약 내용을 실제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한과 규모를 먼저 정해두고 목표 지향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추진하는 것은 부작용만 불러올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과 처우에 큰 차이가 없어 상대적으로 전환 과정이 수월한 기관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근로자의 갈등이 예상되는 사업장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대화와 논의가 우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박수진 기자start@sbs.co.kr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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