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광염(狂炎)소나타>와 베토벤 VIDEO: Ludwig van Beethoven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작가 김동인이 1930년에 발표한 <광염(狂炎)소나타>는 분명 시대를 몇 걸음이나 앞서 나간 소설이었다. 작품 속의 주인공 백성수는 광기에 사로잡혀, 혹은 광기를 일부러 조장한 후에 범인(凡人)은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차례로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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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억압적인 정치상황에서 김동인은 어떻게 이런 순백의 창의적인 작품을 – 사회와 정치와 민족을 논하지 않고 ‘그저 창백히 순수하게도’ 극단적인 유미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런 대담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을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 하긴 ‘예술가’라면 가능하거나 의당 그래야 할 런지도 모르겠다. 음악가들도 그렇지 않던가. 우리가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 또한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억압적인 정치상황에 괴로워하고, 불우한 개인과 사회의 역사에 눈물짓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의연히도 그들은, 놀라운 작품을 써내려갔다.


빈 고전파의 마지막 주자였던 베토벤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 아이디어 혹은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하나는 그의 스승이자 선배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정립해놓은 엄격한 기악음악의 형식과 논리구조를 탄탄하게 계승하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기악 소나타 음악은 3악장으로 구성하고, 1악장에서부터 순서대로 빠르고 – 느리고 – 빠른 음악을 배치한다던가.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복잡하게 구성하되, 2악장은 느릿한 두 도막 형식으로 듣는 이를 달랜 후 3악장은 다시 소나타 형식으로 쓰거나 혹은 좀 더 빠르고 화려한 론도를 붙인다는 식이었다. 무릇 서양 예술사에서 ‘형식(形式)’에의 엄정한 요구는 당연하고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그들은 수 백 년 간에 걸쳐 치열한 토론과 거듭된 연구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도 정교한 형식논리를 찾아냈고, 그 속에 복잡하고 심오한 사상까지 담아내 안팎으로 형식과 내용이 완비된 고도의 음악예술을 기어이 완성시킨다. 


한편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격렬한 자기 표현을 완벽하게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정립된 그 형식을 ‘뒤틀거나’ 혹은 그 형식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의 32곡에 이르는 피아노 소나타는 그의 이런 고민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명료한 증거다. 제8번 ‘비창’에서 슬슬 모차르트식의 정교한 형식주의 음악에서 보다 더 주관적인 감정을 싣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베토벤은 제14번 ‘월광’에 이르러 기어이 대형사고 하나를 치고 만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제14번> ‘월광’ 1악장. 피아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그건 1악장에 지극히 느린 템포의 음악 – 그러니까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의 음악을 배치한 것이었다. 당대에는 불쾌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파격이었을 것이다. 알레그로 – 아디지오 – 알레그로의 엄격한 3악장 양식에서 아예 첫 발부터 어긋났다. 1악장이 느리니 2악장을 또 느린 음악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두 번째 악장은 알레그레토(Allegretto)가 된다. 그럼 또 3악장은 어쩌란 말인가? 3악장은 기존의 소나타 음악처럼 빠르긴 빠르되 2악장과 뚜렷한 대비를 확보해야하니, 아예 ‘무시무시하게 빠르게’ 세팅한다. 그래서 프레스토 아지타토(Presto agitatio)의 음악이 되었다. 첫 번째 악장의 느릿하고 비감한 서정의 신비와 3악장의 격정적인 폭발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2악장은 브릿지 역할에만 충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길이를 매우 짧게 만들었다. 이제 베토벤은 자신의 마음 속에 담긴 그 깊은 심상의 비극적 주제의식과 이를 담아내는 엄격한 ‘고전형식’과의 교묘한 줄타기 혹은 격렬한 내면의 투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한다. 사실 그 또한 ‘형식’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제3악장에서는 어둡고 격정적인 열정이 폭발하듯 분출된다. 피아노 머레이 페라이어)


베토벤 사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다. 지금 우리 곁에는 수많은 무형식의, 극도로 자기고백적인, 아예 모놀로그인 피아노 음악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베토벤 음악의 그 형식미가 너무도 그립지 않은가. 형식에의 제한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것과 투쟁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힘겹게 음악을 써내려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이야말로 이 세상 어떤 음악보다 자유롭고, 동시에 어떤 피아노 음악보다 엄격하고 단정할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제14번> 전곡. 피아노 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그는 세상과 싸웠고, 형식과 투쟁했고, 고도로 엄정하게 직조된 지극히 복잡한 논리구조 속에서 그 자신 내면의 불타오르는 정념을 완벽하게 다듬어 냈다. ‘광염 소나타’의 백성수는 살인과 폭력으로 탐미의 길을 걸었지만, 베토벤은 오직 내면에의 끝없는 자기 투쟁과 스스로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성찰로 위대한 음악을 온 가슴으로 낳았다. 베를리오즈의 말대로 월광 소나타는, 혹은 베토벤의 음악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묘사할 길이 없는 한 편의 위대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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