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2050년엔 엘리베이터 타고 우주로..."



창공 향한 인간 욕망, 바벨탑 넘어서다

공(天空)으로 더 높이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세계의 초고층 건축들을 모아봤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은 바벨탑 상상도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하다. 돋보기로 봐야 겨우 보이는 개미 같은 인간 군상이 탑의 거대함을 돋보이게 한다. 미완의 바벨탑은 그 아래 도시를 눌러버릴 기세다. 중심축이 살짝 기울어진 것은 인간의 허영에 대한 경고처럼 보인다.




고층빌딩도 비행기도 없던 460년 전 이 그림을 그렸던 브뤼겔의 상상력은 오늘날 현실이 되고 있다. 현재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 2020년 완공 예정인 1km 높이 제다 타워는 21세기 바벨탑이나 마찬가지다.


천공(天空)으로 더 높이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제다 타워보다 훨씬 높은 원마일(1.6km) 타워, 이를 뛰어넘어 4000m 높이의 건축물까지 구상이 나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예 지상의 굴레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는 건축·구조물까지 추진되고 있다.


피라미드에서 부르즈 칼리파까지

인류 최초 마천루로는 기원전 8000년 예리코탑(높이 8.5m)이 꼽힌다. 기원전 8500~6000년 팔레스타인에 처음 성곽 도시(여리고)가 건설되고 농업혁명으로 정착경제와 목축업이 시작됐을 때 만들어졌다. 기원전 2569년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는 건립 이후 3800여 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자리를 지켰다.


바벨탑의 경우 신·구약성서 어디에도 높이 언급이 없다. 구약 창세기에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라고만 묘사돼 있다. 단 성경 선정 과정에서 제외된 문서들인 외경(外經) 등에는 2400m에서 200m 까지 다양하게 높이가 나와 있다. 고고학자들이 바벨탑으로 추정하는 건축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서아시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사이의 지역, 현 이라크)의 도시 바빌론에 위치한 탑인 에테메난키가 대표적이다. 기원전 610년경 지어졌으며 높이 91m로 추정된다.


1311년 건립된 영국의 링컨 대성당(높이 160m)은 3800년 만에 기자 피라미드 기록을 깼다. 1549년 뾰족탑이 무너지며 1위 자리를 뺏겼으나, 원래 높이로는 1884년까지 573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이후 워싱턴 기념탑(1884년·169m)이 건립 이후 5년간, 에펠탑(1889년·324m)이 41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자리에 올랐다.


20세기 들어 자본이 집중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카고·뉴욕을 중심으로 마천루 건설 붐이 일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에 건설된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들이다. 완공과 동시에 각각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크라이슬러 빌딩(1930년·318.9m)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년·443.2m)은 8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뉴욕의 랜드마크다. 특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은 세계 최초로 100층을 넘긴 마천루였으며 건립 후 41년간 1위를 지켰다. 이후에도 1972년 월드트레이드 센터(526.3m), 1974년 시어스 타워(현윌리스 타워·527.3m) 등 1위 경쟁이 이어졌다.


1998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 타워(451.9m)가 등장하면서 높이 경쟁의 무대가 아시아·중동으로 넘어 왔다. 2010년 등장해 현재까지 1위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는 지상에서 124층 전망대까지 60초 만에 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2층형 엘리베이터(분속 600m)를 갖췄다.




100만명 수용하는 도시형 초고층빌딩

(사진)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피터 브뤼겔의 '바벨탑', 시카고의 레이크 포인트 타워, 아날렘마 타워, 훗날 초고층 빌딩의 원형이 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 스케치 '더 일리노이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저서 '증거', 클라우드 아키테처 오피스 등


초고층 빌딩은 독일 출신의 미국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가 제시한 1921년 초고층 빌딩 디자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생긴 초고층 빌딩들은 단면이 삼각형 구조인 그의 디자인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디자인은 훗날 두 제자인 존 헤인리치와 조지 스치포리트가 설계해 1968년 완공된 시카고 레이크 포인트 타워에서 구현된다. 70층, 197m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은 아니었지만 가장 높은 주거용 빌딩이었다. 에이드리언 스미스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 서울타워 팰리스 3차 설계 때, 3개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나가는 Y자형 삼각대 구조의 레이크 포인트 타워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후 Y자형 삼각대 구조를 부르즈 칼리파에도 적용했다.


최근 초고층 설계 전문가들의 지향점인 '원마일 타워(1마일·1.6㎞높이의 건물)'의 원형은 1957년 미국의 대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케치 '더 일리노이스'였다. 1610m 높이 528층 빌딩을 시카고에 짓겠다는 구상이었는데, 단순한 콘셉트 제시가 아니라 현실화 가능한 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스미스의 설계로 2020년 완공되는 사우디 제다 타워(1007m)에서도 라이트 스케치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원마일 타워를 능가하는 것으로는 미국 건축회사 KPF가 2015년 제안한 400층짜리 스카이 마일 타워(1700m 예정)가 있다. 2008년 제안된 두바이시티 타워(2400m 예정) 프로젝트도 부르즈 칼리파의 3배 높이를 지향한다.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건축물을 지으려는 계획도 있다. 미국 건축가 유진 스이가 1991년 제안한 울티마 타워는 높이 3218m, 500층 규모로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건물 연면적은 140㎢로 수원시의 1.2배 규모이다. 예상 건설비는 170조원이다.


일본 최대 건설사인 다이세이(大成)건설이 1995년 제안한 X-Seed 4000은 높이 4000m, 800층 규모로 100만명이 거주할 수 있다. 후지산(3776m) 보다도 높다. 건설 후보지는 도쿄만, 건설비 1500조원, 공사 기간 3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지어 내려오는 초고층 빌딩을 제안한 회사도 있다. 뉴욕의 건축회사 '클라우드 아키텍처 오피스'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아날렘마 타워'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지구 궤도에 소행성을 위치시키고 이 소행성에 건물을 매달겠다는 내용이다. 빌딩의 최상층은 3만2000m 지점에 있다.


이 회사는 "홍수나 지진, 해일 피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이상적 거주공간이 될 것"이라며 "기술적 과제가 남아있지만, 현재 기술 발전속도로 볼 때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밝혔다. 소행성은 별도의 추진장치를 통해 지구 궤도로 끌어오게 된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이미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일본 5대 건설사인 오바야시건설은 2014년에 지상에서 9만6000㎞ 높이까지 올라가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2050년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지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띄운 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늘어뜨린 케이블을 통해 아래위를 오가는 엘리베이터를 만든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정원은 30명이며, 지구에서 우주까지 1주일이 걸릴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우주 엘리베이터 개념은 1895년 러시아 과학자들이 처음 내놓았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가 1979년 이를 소재로 소설을 냈다. 하지만 구체적 시공계획과 일정을 제시한 것은 오바야시가 처음이다.


우주정거장과 지상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다.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이 우주정거장에 작용하기 때문에 케이블은 저절로 당겨진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지구를 두바퀴 반도는 길이를 감당할 케이블의 소재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 그러나 철강보다 100배 이상 강한 '탄소 나노튜브'가 후보로 정해져 이미 산학 협력으로 실용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회사는 2030년쯤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서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실제 건설에 대비한 기초 실험도 마쳤다. 건설비용은 10조엔(약 10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경제성은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우주로 화물을 나르면 1㎏당 2000만원 이상이 드는데 우주 엘리베이터로는 20만원이면 된다.


이 기사에는 정예슬(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한독과), 강혜영(연세대·경제학과) 인턴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1.6㎞ 건축물, 지금도 지을 수 있어

더 높은 건물 위해선 기술혁신 필요"

세계 초고층 건물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회사가 있다. 미국 뉴욕의 구조설계(structural engineering) 회사 '손턴 토마세티'다. 손턴 토마세티는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타워와 내년 중국 최고층 건물이 될 우한 그린랜드 센터의 구조설계를 책임지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타워, 대만 타이베이 101 등 한때 세계 최고층 기록을 가진 건물들도 손턴 토마세티 손을 거쳤다. 


손턴 토마세티는 2015년 손턴 토마세티와 뉴욕의 또 다른 구조설계 회사 위드링거 어소시에이츠가 합병해 탄생했다. 세계 40여 개 대도시에 지사가 있다. 최근 뉴욕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 근처 본사에서 레이먼드 다다지오(Daddazio) 사장을 만났다. 그는 1979년 위드링거 어소시에이츠에 입사했고, 2006~2015년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였다. 손턴 토마세티와 합병한 후에는 합병회사인 손턴 토마세티의 사장 겸 이사를 맡고 있다.


건물 시공 때 바람(風) 영향이 가장 중요

구조설계자(엔지니어)는 무슨 일을 하나.

"건축설계자는 건물의 형태와 모양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구조설계자의 역할은 건축가의 비전이 현실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구조물이 무게를 지탱하고 제대로 서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 종종 건축가의 비전이 비용·기술적 제약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때 구조설계자와 건축가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건물 구조를 수정해나가기도 한다."


점도가 낮은 

고강도 콘크리트 개발로

물처럼 800m 높이에 

빠르게 흘릴 수 있어


기술 발전으로 더 높은 건물이 나오고 있다.

"초고층 건물에서는 철강보다 콘크리트 비중이 높아진다. 많은 양의 철강을 수백m 높이로 올려 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점도(粘度)가 낮은 고강도 콘크리트 개발은 초고층 건물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이 콘크리트는 거의 물처럼 흘릴 수 있기 때문에 800m 이상 높이까지 빠르게 올려 보내는 게 가능하다. 높은 곳으로 콘크리트를 보내려면 건물의 아주 높은 곳에 크레인을 배치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려면 구조설계자와 시공사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초고층 건물의 구조 엔지니어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건물에 가해지는 바람의 압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리 건물 모형을 만들어서 풍동(wind tunnel) 시험을 한다. 이를 통해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설계자와 함께 찾는다."




제다 타워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에이드리언 스미스+고든 길 건축(AS+GG)'의 에이드리언 스미스 대표가 제다 타워 설계자로 선정됐을 당시 지구상에서 1㎞ 높이의 건물을 세울 수 있는 엔지니어링 회사는 3곳 정도였다. 우선 손턴 토마세티가 그중 한 곳이라는 점이 참여를 위한 기본 조건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설계자 스미스 대표와의 오랜 신뢰 관계가 작용했다. 현재 시카고 지사의 로버트 신이 제다 타워의 구조설계를 총괄하고 있는데, 그는 스미스 대표가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에 있었을 때 같은 회사에서 20년 넘게 함께 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시간 쌓인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심이 바탕이 됐다."


스미스 대표는 "초고층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아는 엔지니어 없이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수 없고, 설계해서도 안 된다"며 "손턴 토마세티에 제다 타워의 구조설계를 맡긴 것은 이곳 엔지니어들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기술이 향후 발전의 관건

1㎞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도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 또는 1마일(1.6㎞) 높이의 건물은 현재의 기술로도 지을 수 있다. 그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선 더 많은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엘리베이터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중국 상하이에는 공항에서 시내를 연결하는 자기부상 열차가 있다. 자성(磁性)으로 서로 밀어내는 힘을 이용하는 방식인데, 엘리베이터 회사들도 이런 자기부상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있다. 지금처럼 무거운 케이블을 사용하면 엘리베이터를 빨리 움직이게 하는 데 제약이 많지만, 자기부상 열차처럼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나온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높이의 건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 회사를 합병한 이유는.

"손턴 토마세티의 토마스 스카란젤로 CEO와 건축업계에서 오래 알고 지냈다. 우리는 각자의 회사에서 1979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와 앞으로의 목표에 서로 공감해 합병 논의를 시작했다. 두 회사 모두 뉴욕에서 60여 년간 구조설계 업체로 활동했지만, 전문 분야가 달라 서로 겹치거나 직접 경쟁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합쳤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합병 전 손턴 토마세티 직원이 900명, 위드링거 어소시에이츠가 300명이었다. 자연스레 손턴 토마세티라는 회사 이름을 쓰게 됐다."


다다지오 사장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욕 토박이다. 그는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허드슨강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곤 했다. 뉴욕의 다리, 스카이 라인을 보고 자라면서 건축의 세계에 빠졌다"고 했다.

WEEKLY BIZ, 최원석 차장, 김남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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