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의 심리전, 극에 달했다(1)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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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의 심리전, 극에 달했다(1)

2017.10.23

삐라가 청와대에도 뿌려졌다.

지난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새벽, 평소와 같이 일어나 화단에 심은 꽃과 채소를 보러 나갔습니다. 계단 옆 후미진 구석에 숨겨지듯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지 않으면 떨어지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러나’ 궁시렁궁시렁(충청도 말)거리며 집어 들었습니다.

삐라였습니다. 하늘에서 날린 것이라면 여기 떨어지기 어려울 텐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마당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등굣길을 따라갔습니다. 묘하게도 CCTV 카메라가 빼곡히 설치되어 있는 초등학교 주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38장이었습니다.

내용은 ‘명실상부한 핵 강국, 미군은 살길 찾아 평택으로…, 도마 위에 오른 초대국’ 등등 죽이거나 죽일 수 있다는 공갈·협박 일색이었습니다. 곧 경찰에 신고하니, 경찰차가 달려와 수거했습니다. 경찰은 시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등굣길과 다른 방향 대로에서 또 30여 장을 모아 이웃 아파트 경비원에게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학교까지 오면서는 무려 150여 매를 수거해 학교 경비실에 맡겼더니, 운동장에 굉장히 많아서 새벽에 치웠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날 삐라가 성북구와 서대문구 등에 뿌려졌을 때만 해도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겠거니 하고 믿고 있었습니다. 전단지를 경찰에게 넘긴 것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 이후 삐라가 영등포, 인천, 일산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마침내 국군 최고 통수권자가 근무하고, 기거하는 청와대 안마당에도 뿌려졌다네요. 적의 무차별 대남 심리전에 우리 국가 통치의 핵심인 청와대가 뚫린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적과의 심리 전쟁에서 경계 작전이 실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적의 심리전 전장(戰場)이 되었는데, 최고 통수권자 발 앞에 삐라가 떨어지도록 군과 경찰 그리고 모든 대적(對敵) 작전 기관들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대적 심리전 작전은 완전 실패했고, 오히려 우리 군 최고 통수권자 거주지역까지 뚫리는 참담함을 국민들 앞에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여러 수단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핵전쟁은 핵 억지력으로만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전쟁 대비책이란 뜻이겠지요. 핵전쟁은 전면전이지만 심리전은 장기 소모전입니다. 심리전은 적은 비용으로 커다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비전투적인 전쟁입니다. 그 방법도 다양하지요. 그런 것을 비전문가인 일반 국민도 알고 있는데 우리 정부, 군, 여타 작전 기관들은 알면서도 적 앞에 발가벗고 마냥 서 있습니다.

서울에 삐라가 뿌려지던 날 상황은 의심의 여지가 참 많습니다. 제가 주운 삐라는 건물 지붕 위에는 없었고, 계곡에서 겨우 서너 장 발견했습니다. 도로 포장하던 사람들(구청 소속 차량이었음)도 주웠던 것을 꺼내 주면서, “이상해요. 길거리에만 떨어져 있어요.”라며 갸우뚱했습니다. 어느 곳에는 2만여 장이 한 곳에서 뭉텅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날 밤의 바람의 방향, 풍속 그리고 삐라가 뿌려진 형태 등 여러 가지가 명석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공중에서 살포되었으면 바람 따라 날리는 것이 상식입니다. 2만 여장이 한 장소에서 발견될 경우는 운반용 풍선이 터지지 않았거나, 누가 일부러 가져다 두었거나, 아니면 요즘 군인들을 가장 긴장케 하는 드론으로 날랐을 경우 등입니다.

최선(적에게 대량으로 삐라를 보내 겁이나서 다시는 도발 못하게 함)을 다해도 모자랄 심리전에서 우리 군과 정부는 차선(막는 것)에도 실패했습니다. 전장에서 차선은 죽음일 뿐입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은 다음 작전을 위해 용서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에 실패한 군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면치 못합니다.

청와대는 각종 최신 장비와 시설로 지상과 지하 상공까지도 정예 경호 경비 인력이 물샐 틈 없이 경비를 펼치고 있는 곳입니다. 청와대 경내에 삐라가 뿌려진 방법 등을 소상히 밝히고, 용의자가 있다면 체포해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기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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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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