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 보니 가을이 와 있었다’ - "슈만이면 더 좋지 않을까" VIDEO: Schumann and Dichterliebe


Robert Alexander Schumann

Dichterliebe


  ‘깨어나 보니 가을이 와 있었다.’ 어느덧 아침 저녁이 서늘해졌다. 가을이 온 것이다. 독일 가곡을 들을 때가 되었다. 그것도, 슈만이면 더 좋지 않을까. 


(<시인의 사랑>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슈베르트 못지 않게 많은 가곡을 썼던 슈만이지만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만큼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곡집도 없는 것 같다. 실연 당한 젊은 이의 애절하고도 처절한 마음을 노래한 연가곡이지만, 독일 리트 특유의 담백한 서정과 고요한 자아성찰의 분위기가 유독 이 계절의 차분한 모습과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 음악은 우선 맑은 냇물처럼 아름답고 유려하다.


그래서 우리는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가 노래한 <시인의 사랑>을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독일인 테너지만 그의 노래는 먼저 한없이 자연스런 미성이다. 넋 놓고 들으면, 애써 시어를 의식하기보다는 목소리 자체의 밝은 아름다움을 우선 살리려는 지중해권 테너들의 순진무구함이 떠오른다. 


(슈만 <시인의 사랑> 제1곡 ‘이렇게 아름다운 5월에’.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 피아노 후베르트 기젠)


시어는 뒤셀도르프 태생의 19세기 독일 최고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썼다. ‘로렐라이’, ‘노래의 날개 위에’ 같은 유명 시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다. 나치 정권이 하이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시에 음악을 붙인 노래들을 모두 금지곡으로 묶으려 하였으나 끝내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모든 독일인들의 마음 속에 그 음악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부르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민요 <로렐라이>.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음악을 붙인 ‘독일의 국민민요’. 테너 페터 슈라이어)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하이네는 사촌 여동생 아멜리에 하이네와의 이뤄지지 못한 비련의 사랑을 경험한다. 사랑은 언제나 극단적이지 않던가. 수많은 이들이 추상화하고 찬양하는 숭고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에서의 사랑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것이며, 또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랑에 좌절한 하이네는 일종의 도피적 행위로 그 사랑을 이상화하고 탐미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시가집 Buch der Lieder>를 통해 쓰라린 그 사랑의 경험을 발라드 스타일의 시가로 아련하게 적어 내렸다. 고전적인 서정시의 단정함보다는 입으로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예민하고 쓰라린 연가(戀歌)이기도 했다.


<시인의 사랑> 제7곡에서 실연당한 젊은이는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울지 않으리, 이 가슴이 부풀어 터지더라도 영원히 잃어 버린 그 사랑이여, 나는 울지 않으리.”


(<시인의 사랑> 제7곡 ‘나는 울지 않으리 Ich grolle nicht’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피아노 줄리어스 드레이크)


<시인의 사랑>은 전통적으로 섬세한 테너들이 불러온 리트였다. <겨울나그네>가 바리톤을 위한 노래이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들이 우아한 소프라노에게 헌정된 음악인 것과 비교된다. 앙상하고 사변적이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젊은이가 자신의 실패한 사랑을 열 여섯 편의 처절한 모놀로그로 노래한다. 


연가곡의 마지막 곡의 제목은 ‘옛날의 불길한 노래 Die alten, beosen Lieder’이다. 젊은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고백한 그 모든 쓰라린 실연의 이야기들을 커다란 관 속에 담아 저 멀리 바다로 떠나보내려 한다. “옛날의 불길한 노래, 화가 치미는 나쁜 노래, 그것들을 이제는 장사지내자. 커다란 관을 가지고 오라.”


영국이 낳은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는 프리츠 분더리히와는 정반대의 해석을 들려주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의 사랑> 해석가이다. 메마른 외모만큼이나 병약한 듯 아름답고, 무심한 듯 깊이 있는 그의 슈만 해석은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보스트리지가 노래하는 <시인의 사랑> 마지막 곡을 들으며 이 가을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시인의 사랑> 제16곡 ‘옛날의 불길한 노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피아노 줄리어스 드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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