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문화로 다시 뜨다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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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문화로 다시 뜨다

2017.10.17

직업상 해외는 많이 다녔던 데 반해 국내는 많이 가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제주에 정착하고부터는 서울에 갈 때를 제외하면 다른 도시나 지방에 갈 일이 별로 없었지요. 지방 도시들이 융성하는 모습을 들어 알면서도 실제로 가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일 때문에 청주 나들이가 잦아졌고 말만 듣던 세종 시에도 가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서울과, 고향인 안동을 빼고는 청주를 제일로 많이 찾는 셈이지요. 올해 들어 벌써 여섯 번째. 국내외 어디를 가더라도 저는 그 도시의 첫인상에 주목한합니다. 사람을 만나도 첫인상이 오래 가듯이 도시의 첫 인상 또한 좀체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첫인상을 토대로 도시의 변모를 감지하면서 그 도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오송역에서 내려 차로 수십 분 거리인 청주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특별한 첫인상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진주, 남원, 전주 같은 도시는 여전히 진주답고 남원다운, 또 전주다운 느낌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청주는 왠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청주에는 갈 때마다 새로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늘 받는데 아마도 문화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은퇴 후 문화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거기에 깃든 문화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청주’ 하면 저에게는 직지(直旨)페스티벌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 직지요체심절이란 원명을 줄여 그냥 직지로 불리는 이 고서(古書)가 바로 청주에서 만들어진 활자로 찍어낸 것이지요. 직지 페스티벌은 5, 6년 전부터 생겨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양에 대해 긍지를 가져도 좋을 몇 개의 우리 문화 현상이 있습니다. 한글이 그것이며 그 이전 금속활자의 발명이 그것입니다. 직지를 찍어낸 금속활자를 만든 곳이 바로 청주 시내 한복판 흥덕사 부근이지요. 이를 한없이 궁금해 하다가 바로 얼마 전 직접 가서 그 터와 그 유물로써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금속활자 주조,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80여 년이나 앞서 만들었으니 우리 조상들의 당시 문화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는 것이지요.

한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런데 한글을 창제하실 무렵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자들을 대동하고 요즘말로 워크숍을 한 곳이 또한 청주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금 천연 샘물로 잘 알려진 초정약수터에 두 번이나 내려오셔서 한글 창제에 박차를 가하면서 나라 정책을 구상을 하신 것이지요. 지금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청주에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수도를 떠나 휴식 속에서 정책구상을 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청주에서는 젓가락페스티벌이 3년 전부터 열리고 있는데 이 또한 직지페스티벌처럼 국제적인 행사입니다. 글로벌시대에 대부분 행사가 국제적인 모습을 띠게 마련이지만 직지나 젓가락 페스티벌은 문화의 기초적 요소들을 바탕에 깔고 있는 만큼 보편성이 있어 국제행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 국가에서 활자와 인쇄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를 살피곤 하지요.

젓가락 또한 아시아권에서는 먹는 일의 중심에 있어 모든 이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젓가락페스티벌을, 처음엔 먹는 축제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젓가락을 만들어 쓰는 문화적 현상을 함께 비교 연구하는 축제라는 것입니다. 주최지인 청주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청주문화재단 내에 젓가락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지요. 황우석 사태 때 우리의 젓가락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문화 코드를 짚어내는 이어령 선생에 의하면, 젓가락은 아시아 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이며 젓가락을 빼고서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논하기도 어려울 정도라 하니 젓가락이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쉬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활자와 젓가락에 공통된 것은 읽는 것, 먹는 것을 둘러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도구나 장치를 창조한다는 것인데, 이 외에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창조 작업으로 공예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청주는 지난 2007년부터 천막 공간에서 시작한 국제공예비엔날레를 큰 실내 공간으로 옮겨 와 격년으로 열어오고 있습니다. 그새 10년이 흐르다 보니 공예비엔날레의 전시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모습이지요. 올해, 지금 개최되고 있는 공예비엔날레는 공예 전시라기보다는 미술 전시라고 해야 할 듯하합니다. 그 규모와 수준 때문에 한 번에 보고 다 소화를 할 수가 없어 두 번, 세 번을 보면서도 볼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공간을 십분 활용해 기획한 설치미술과 비디오아트 중심의 이번 전시는 작품을 품은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작품이 너무나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와 비디오아티스트들과 함께 국내 유수의 작가들이 참여한 만큼, 그야말로 ‘거대 예술 작품’이 실내 공간에서 만들어 낸 장관이라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미술 문외한인 저의 눈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봐온 설치미술 전시 중 최고의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전시(10월 20일까지)를 가능하게 해 준 청주문화재단과 그 관계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만일 청주가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이 실내 공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수준급 전시가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지요. 그 전시 공간이란 게 다름 아닌 옛 연초제조창이라면 더 놀랄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폐 공장이나 페 역사(驛舍) 건물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돼 있지요. 국내 어느 제강회사의 버려진 창고를 부산비엔날레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실은 미술계에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청주의 연조제조창은 규모가 커서 내부 공간 연면적이 1만 평이나 됩니다. 만일 이 시설을 부수고 거기에 아파트를 지었다면 도시의 역사와 미학은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청주시가 이를 문화 공관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매우 창의적인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청주 연초제조창은 이렇게 변신을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담배를 대량 생산하여 국민건강을 해치게 한 오래된 공장이 인간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문화적 목적에 사용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상징성이 강합니다. 장소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끝나고 나면 또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이 공간에서 벌어지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도 청주 연초제조창은 미래를 위한 공간, 젊은이들의 꿈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번 문화행사(2017 세계문화대회)는 정부, 지자체, 그리고 민간단체(월드컬처오픈/WCO)가 힘을 합한 범공동체적 행사로서, 좁은 의미의 문화, 즉 미술, 음악, 공연 등 예술 문화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자기만을 생각하는 현시대 인간의 모습을 성찰하여 근원적인 인간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사회 속에서 공익을 우선시하는 ‘신인류’로 바꿔 나가기 위한 새로운 문화행사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전국에서 그런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제각기 스스로의 방안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대에 바닥에 말라붙은 공감을 이끌어 내어, 이를 바탕으로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문화행사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DNA 에 들어 있는 홍익인간 이념을 제대로 실현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문화 한마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멋진 일을 해내고 있는 청주의 말없는 노력이 참으로 살갑게 다가옵니다. 직지의 금속활자를 주조한 그 문화적 역량이 지금 한창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인지하고 격려하려는 것인지, 머지않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센터가 곧 청주에 문을 열 것으로 전망됩니다. 청주가 문화 속의 문화, 역사 속의 역사라 할 인류기록문화의 세계 본부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청주가 문화로 다시 뜨고 있음을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증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청주 출신 어느 지인이 제게 해 준 말 한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청주는 뭘 하든 요란하게보다는 은근하게 해오고 있습니다. 활활 타는 큰 불에 급하게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은근한 불에 천천히 익혀가는 것이 바로 청주의 방식입니다.” 요즘 각 지방에서 문화를 외치며 예산을 마구 쓰는 문화적 혼돈의 시절에 앞으로 두고두고, 은근한 방식이 보여주는 문화의 깊이를 청주에서 보고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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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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