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2심 재판의 과제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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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2심 재판의 과제

2017.10.16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뇌물죄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의 키워드는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었다. ‘포괄’이나 ‘묵시’라는 용어는 명확하지 않은 대상이나 행위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말이다. 

판결은 피고인은 물론 누구나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명료 할수록 좋다. 체형이 수반되는 형사재판에선 더욱 그래야 한다. 애매모호한 용어를 중복적으로 동원해 유죄 판결한 이재용 재판은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평판에 값하지 못한 재판’이 됐다.

이재용 재판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대기업들로부터 800억 원에 가까운 기금을 출연받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비리였다. 삼성의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은 204억 원으로 참여 기업 중 가장 많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두 재단에 대한 기업의 출연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주 혐의가 부인됐다. 대신 재단설립 비리에 비해서 부수적인 사건이었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훈련을 위한 삼성의 지원금만을 직접적인 뇌물로 봤다. 정유라를 지원한 기업은 삼성뿐이었다. 

두 재단과 관련해 그토록 요란했던 특검의 수사나 언론의 보도가 무색해졌다. 재판부가 기업들의 두 재단 출연을 뇌물이 아니라고 본 이상 삼성의 출연만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특검은 삼성 이외의 기업에 대해서는 수사기간 연장이 안 돼 수사를 못해 기소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으나 그보다는 수사를 했더라도 유죄입증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특검은 삼성이 정유라의 승마를 지원한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에다 수사의 초점을 맞췄고, 그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특검이 새벽에 정유라를 몰래 빼돌리듯이 법정증인석에 세운 것이 결정적인 유죄의 증거가 됐다고 하니 특검의 고충에도 이해는 간다.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라는 말은 뇌물의 대가성을 따지면서 나왔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포괄적’ 현안이고, 명확하게 이것을 봐달라고는 안 했지만 봐줄 것으로 기대하고 돈을 건넸을 것이므로 ‘묵시적’ 청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이 주장은 특검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개별적인 사건을 공소장에 포함시켰음에도 거기에서 명확하게 유무죄를 가리기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동원한 법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나 박 전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삼성에 그런 현안도 없으므로 청탁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 또한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간여한 것이 없고, 뇌물을 요구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주장한다. 

포괄적 뇌물죄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은 대가성이 있건 없건 뇌물이라고 본다는 법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었다.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뇌물수수가 이뤄진 데다, 각각의 행위마다 대가성 유무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재용 사건도 정경유착 사건이라는 점은 같지만 뇌물의 대가성 유무를 따질 구체적인 사안이 공소장에 적시됐다는 점에선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는 다르다. 법원이 구체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두루뭉수리로 한 것이 다를 뿐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에 대해서도 최씨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 박 대통령이 화를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파렴치 범죄의 공모자로 보는 것은 박 대통령에 대해 ‘무지(無知)의 죄’를 과도하게 추궁한 것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정유라 지원에 대해 자신은 몰랐고 실무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진술이 대표적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접적인 청탁 사안에 대해 자신이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최순실과 정유라의 존재를 사건이 터지고서야 알게 됐다는 국회 국정조사 증언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에 대한 2심 공판이 지난 12일부터 시작됐다. 2심 재판은 1심 판결의 모호성을 걷어내고, 특정 현안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명시적으로 가려주는 판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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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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