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北 방공망


유용원 논설위원 겸 군사전문기자


  1983년 5월 어린이날 중국 민항기가 춘천 미군기지에 불시착했다. 우리 전투기들이 길을 터줬다. 중국 선양을 이륙한 민항기는 상하이로 갈 예정이었지만 납치범 여섯이 대만행(行)을 요구했다. 기장이 몰래 평양으로 향했지만 납치범들이 알아채고 협박했다. 민항기는 북한 영공을 지나 휴전선 쪽으로 꺾었다. 




미확인 비행체 출현에 

우리 전투기가 긴급 발진했고 휴전선을 넘어온 민항기를 춘천 미군기지로 안내해 착륙을 유도했다. 중국 민항기는 1시간 넘게 북한 영공을 누볐지만 그쪽 전투기들은 이륙하지 않았다. 대공포 경고사격 같은 대응도 없었다. 방공망이 뻥 뚫렸던 것이다. 1980년대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출동한 미군 전투기가 실수로 개성 인근까지 날아들어 간 적도 있다. 그때도 북한에선 움직임이 없었다. 


지난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 사이 미국 B-1B 폭격기 2대가 동해 NLL을 넘어 무력시위를 벌였을 때도 북한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정말 몰랐을까. 우리 정부는 북한이 미군기 북상(北上)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 조기 경보 레이더는 탐지 거리 500~600㎞ 정도다. 몇 개 기지에서 24시간 번갈아 가동된다. 그러나 대공미사일 발사용 레이더는 늘 켜놓지 않는다. 조기 경보 레이더가 울려야 대공 레이더가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B-1B편대]북 NLL 넘어 북쪽 풍계리 130km 코앞까지 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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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한 한 방공포사령관은 

"북 대공 레이더는 전력 부족과 부품 조달 문제로 가동 못 할 때가 많다"고 했다. 북 조기 경보 레이더가 미 B-1B를 탐지했지만 모니터에 작게 나타나 감시병이 놓쳤을 수도 있다. 부분적인 스텔스 성능을 가진 B-1B는 B-52 폭격기의 20% 크기로 잡힌다. 소형 비행기처럼 보인다. 설사 알아챘더라도 야간 작전 능력이 떨어지는 북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한·미 군 당국이 발표하지 않은 B-1B 비행 사실을 북이 먼저 항의한 일도 여러 번이어서 이번에 몰랐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은 나름 조밀한 방공망을 갖추고 있다. 

1만3800문 넘는 고사포와 휴대용 대공미사일, SA-2·3·5 중장거리 대공미사일들이 촘촘하다. 한 블로거가 구글어스로 찾아낸 평양 인근 대공포 진지만 424곳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도 너무 옛날 것인 데다 전력과 부품이 달려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경우 아니면 무용지물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B-1B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군의 허약한 실상을 보게 된 것 같다. 이것이 북이 핵에 집착하는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뜻하지 않은 여객기의 불시착으로 5박6일간의 서울구경을 하고 1983년 5월 10일 특별기편으로 귀국을 서두르고 있는 

중공사람들. 이들의 양손에 들린 선물꾸러미가 돋보인다. /조선일보 DB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7/2017092703181.html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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