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먹으며 노동의 질을 논하다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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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먹으며 노동의 질을 논하다

2017.09.26

젊은이의 거리,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만난 친구와 뭘 먹을까 서로 얼굴 쳐다보다가 짜장면을 먹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오래 안 먹다보니 입맛도 당기고, 빨리 편하게 먹을 수 있고, 가격도 싸고, ….

젊은이의 거리 강남역! 중국집 역시 젊음이 가득합니다. 실내 분위기부터 달랐어요. 조명과 벽지, 그림, 화병 등 화려하고 요란한 실내장식이 젊은이 취향을 저격하고 있었으며 크고 작은 중국 술병 수십 개를 가지런히 진열해 놓은 바 역시 눈길을 끌었습니다.

종업원들도 잘생겼어요. 주문 받고 음식 나르는 청년들은 연예인처럼 금색이나 은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반짝반짝 빛나는 귀걸이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통통한 얼굴은 화장을 잘 받아 '뽀샤시'했고요. 예전 동네 중국집 ‘철가방’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등에는 업소 이름을, 가슴에는 ‘견디는 자가 끝까지 간다’라는 뜻의 영어를 굵은 흰 글씨로 프린트 한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 중국식당 모든 것이 ‘쿨’했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자리에 앉으니 곧장 귀걸이 청년 중 한 명이 주문을 받습니다. “짜장면 두 개”라고 했지요. 청년은 “짜장면 두 개, 네, 곧 갖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따라 하고는 단무지와 중국식 김치를 담은 접시를 우리 테이블에 놓고 갔습니다. 물컵은 테이블에 있었고요.

그런데, 우리보다 꽤 늦게 온 옆자리 손님이 짬뽕이랑 볶음밥을 다 먹고 나갔는데도 우리 짜장면은 나오질 않는 겁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요리나 술은 안 시켰는데 말이죠. “우리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냐”며 점잖은 척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산대 옆에 서 있던 매니저인 듯한 아가씨가 우리를 보더니 눈치를 채고는 주방 쪽으로 가서 뭘 물어보고  우리 테이블로 와서 “손님, 죄송한데요, 주문이 안 들어갔습니다. 제가 방금 주문 다시 넣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라고 하네요. 어떻게 합니까, 참아야지요. 고개를 돌려 주문받은 청년을 봤더니 우리를 보고는 민망한 듯 슬쩍 웃더라고요. 

곧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짜장면을 비비던 친구가 화를 참은 게 화가 났던지 “노동의 질이 떨어진 거야.”라고 말을 던졌습니다. “알바생이어서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 그날 일당 나오고, 자기도 다른 업소 가면 손님으로 대접받는 데다가, 먹고살 게 없어서 알바 뛰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들처럼 머리 염색하고 귀걸이 사고 얼굴 꾸밀 화장품 사려면, 또 해외여행도 가고 데이트도 하려면 돈이 더 있어야 하니까 알바를 하긴 하지만 자기 일처럼 몸 바쳐 열심히 할 생각은 없는 젊은이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곧 대학을 졸업할 자기 아들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데, 생각이 그런 것 같더라는 겁니다.

“일 제대로 못하고, 손님이 뭐라고 하면 열 받아 덤비고 (이 대목에서 친구는 이따금 불거지는 서비스 업소 종업원에 대한 고객의 갑질도 어쩌면 수준 낮은 종업원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터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보기에 따라서는 극히 위험한 발언도 했습니다), 주인에게 대들다가 다른 업소에서 시급 더 준다면 사전 통보도 없이 지금 업소를 그만둬버리고…, 그런 알바생도 있다는 거 아니냐?”고 TV나 신문에 종종 나오는 이야기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을 이만큼 키운 건 질 좋은 노동력이라는 말은 벌써 옛말이야.”라고도 했는데 “현대와 기아차 임금은 최고 수준인데 생산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 증거가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교육 이야기도 하게 됐습니다. “공교육이 왜 무너졌다고 생각해? 선생들이 배가 안 고프니까 잘릴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늙어도 연금 빵빵하게 나오니까 말썽 안 일으키는 게 최고, 그러면서 대충 가르치니까 무너진 거지. 교육과 노동력이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했는데 교육마저 무너졌으니 우리나라 경쟁력은 완전히 맛이 갔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후루룩 짜장면 한 그릇 먹는 사이에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탕수육에 소주는 안 시키길 잘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우수 인력의 공무원 지원으로 인한 공시족 급증 …, 등등 더 많은 주제로 번질 뻔했습니다. 해본들 당장 달라질 것 없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답답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처지가 좀 한심했습니다. 밥은 즐겁게 먹는 게 좋은데 말입니다.

예전에 '봉숭아 학당'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개그맨 심현섭 씨의 당시 유행어를 빌려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정부는 밥을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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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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