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음유시인 '탄호이저' VIDEO: Wagner: Tannhäuser Overture


Tannhauser

in the mountain of Venus


  13세기 독일의 중세 시대. 궁정의 기사이자 음유시인인 탄호이저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금단의 장소인 베누스베르크(비너스의 동산)에 발길을 들여 놓는다. 그곳은 밤낮을 모르고 인간의 육체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말초적 향락만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한동안 베누스베르크의 끈적이는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던 탄호이저는 어느 날 극심한 권태를 느끼고는 다시금 밝은 지상의 세계로 돌아온다. 


Tannhauser in the mountain of Venus. 1896 illustration by Jacques Wagraz. source religion.wik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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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호이저는 원래 독일 중부 튀링엔 지방 바르트부르크 성의 이름난 음유시인이었다. 마침 그가 돌아온 때는 봄의 절정이요, 곧 이 지방의 영주 헤르만 백작이 음유시인들을 모아놓고 노래 경연대회를 개최할 즈음이었다. 영민한 지성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뛰어난 시인이었던 탄호이저도 다시금 이 경창대회에 참가하여 아름다운 시가를 노래할 것을 다짐한다. 마침 그를 오랫동안 연모해오던 영주의 조카 엘리자베트도 그의 우승을 애타게 바라고 있기도 했다. 


바르트부르크의 음유시인들이 차례로 등장해 순수하고 플라토닉한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다. 볼프람 폰 에센바흐,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등 독일 중세 시대에 실존했던 위대한 음유시인 기사들이 오페라 속에 등장하여 그들의 시와 음악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던 탄호이저는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예전의 절친한 동료들의 노래 속에서 어떤 ‘기만’과 ‘허위’를 발견한 것이다.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진정한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탄호이저는 격정에 휩싸여 사랑이란 그런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로맨틱하고 애욕에 넘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금단의 세계인 베누스베르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중세의 엄격한 가톨릭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점에서 탄호이저의 이러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하고도 이단적인 행동이었다. 동료 기사들은 그를 격렬히 비난하고, 심지어는 그에게 사형을 명해야 한다는 이들도 등장한다. 영주 헤르만이 간신히 흥분한 기사들을 달래고는, 탄호이저에게 로마로 순례와 참회의 여행을 떠날 것을 엄숙하게 명한다. 


바그너가 청년 시절에 쓴 문제작 <탄호이저>는 이원론적 세계관 사이의 격렬한 충돌을 그린 오페라다. 표면적으로는 베누스베르크가 상징하는 육체적 사랑과 엘리자베트가 표상하는 정신적이고 플라토닉한 사랑 사이의 대립을 그린 것으로만 보이지만, 심층적인 주제의식은 좀 더 복잡다단하다. 그것은 새로운 예술과 기존의 주류 예술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기도 하고, 로마 가톨릭과 독일 고유 신앙 사이의 대립이기도 하며, 제도화된 종교와 거룩한 개인 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바그너 특유의 꿈틀거리는 거대한 관현악과 깊이 있는 성악의 아름다움으로 풀어낸 기념비적 명작이 <탄호이저>이다. 


특히 서곡이 아름다운데, 오페라 속의 거대한 갈등을 바그너 특유의 드라마틱한 관현악으로 응축시켜 놓았다.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페라 속에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바로 ‘계절의 흐름’이다. 비너스의 동산에서 열락의 세월을 경험하던 탄호이저가 세상의 밝은 빛을 찾아 지상으로 올라온 것은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러던 그가 동료기사들의 탄핵에 직면해 로마로 참회의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계절은 늦가을이다. 이때 음악은 (놀랍게도) 만추의 침잠을 참으로 적확하게 묘사한다. 만물은 더 이상 1막처럼 생기와 희망을 품고 있지 않다. 탄호이저의 연인 엘리자베트 또한 기다림에 지쳐 점차 그 생명력이 소진되고 있다. 


이런 그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탄호이저의 가장 절친한 동료이기도 한 볼프람이다. 그 또한 엘리자베트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친구에 대한 우정 때문에라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에 대한 애처로운 연모의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아리아는 아마도 바그너가 남긴 노래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저 유명한 ‘저녁별의 노래 O du mein holder Abendstern’이다. 


(바그너 <탄호이저> ‘저녁별의 노래’,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


그때 로마로 떠났던 순례자들이 돌아온다. 일행 중에는 탄호이저도 보이지만 그는 ‘로마 이야기’라는 처절한 독백을 부르며 로마에서 교황을 만났지만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절망적으로 토로한다. 멀리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자베트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만다. 그때 기적 같은 구원의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탄호이저가 자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순례자들이 탄호이저의 구원을 알리는 합창을 장엄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2017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탄호이저> 공연 장면)


<탄호이저>는 예민하게 벼려낸 검(劍)과도 같은 오페라다. 30대의 바그너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근본적인 고뇌를 풍부하고도 표현력 있는 음악과 정교한 시어 속에서 처절하고 또 애절하게 표현했다. 오페라는 여러 가지 복잡한 자기주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은 ‘젊은 예술가의 고뇌’가 그 중심에 서 있다. 탄호이저가 경험하는 신-구 예술 간의 극심한 갈등은, 곧 우리 시대의 현재적인 갈등이기도 한데, 이미 제도화 되어 안정감이 있지만 모험 없는 삶을 살 것이냐,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모험적이고 도발적인 길로 인생의 행로를 틀 것이냐는 고민과도 연결 가능하다. 그것은 인류가 영원히 해결하지 못했고, 또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의 영원한 난제이다. 젊은 기사이자 예술가인 탄호이저의 방황과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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