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있었던 일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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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있었던 일

2017.09.12

글을 쓰는 직업 아닌 직업을 가진 터라 이런저런 일로 인사동을 찾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일이 있다가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냥 발길이 인사동으로 향하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하릴없이 한 주일에 한두 번은 인사동을 찾는 셈입니다. 

시인, 묵객이 드나들고 관광객도 즐겨 찾는 인사동은 참 이상한 동네예요. 낭만스러움과 자유분방함, 토속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 도시적인 것과 고풍스러운 것이 함께 살아요. 큰길에 줄지어 있거나 골목 속에 옆구리를 맞댄 채 숨어 있는 음식점, 찻집, 술집 순례도 작은 즐거움을 안겨 주죠. 근데 외지인이 많아서인지 인심은 박한 편으로 비정한 면이 있어요. 길을 물으면 모른다 하고(알바라서?) 음식점에서 다른 음식점을 찾으면(실례인가요?) 바로 다음 골목집이어도 잘 안 가르쳐 준다니까요.

어쨌거나 며칠 전 그날은 참 다급했어요. 모임을 파하고 단골 음식점(이모집)을 나서는데 소변이 마려운 거예요. 음식점으로 되돌아갈까도 생각했죠. 그러긴 싫었어요. 무슨 뚜렷한 주관이나 고집 그딴 거 있어서는 아니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한번 베어 문 과일은 버리고 싶은. 아니 강을 건너고 난 배는 불태우고 싶다고나 할까. 뭐 하여튼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심정 있잖아요. 소설가 김광주선생도 일갈했죠.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볼 수 있겠느냐?"

근데 큰일 났습니다. 소변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황급히 일행과 떨어져 숫자를 세며(1, 2, 3, 4, 어어어…) 다른 음식점으로 뛰어들어 어려움을 호소했죠. 근데 주인인 듯한 남자는 그곳 손님이 아니니 나가달라는 것입니다. 내쫓기는 경황 중에도 얼핏 상갓집 개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더라고요. 다른 샛골목으로 비껴들자마자 벨트를 풀고…. 그 판국에도 옛날 어렸을 적 생각이 나더라니까요. 외갓집(이모집 아님!)에서 비슷한 형편에 처해 외사촌 누나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것을. 

그런대로 볼일을 본 후 몸서리를 치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탁’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들뻘 되는 제복을 입은 순사(巡査)였지요. “경범죄 대상입니다!”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음식점 주인이거나 지역 파파리치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하릴없는 과객(過客)일는지도 모르지만. 젠장, 가던 길 계속 가시지 않고! 이름 모를 그자가 어둠 속에서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와 급히 꼬리를 말고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어두워서 안 보였겠지만) 죽어가는 목소리로 선처를 호소했지만 무위로 끝났답니다. 사실 그 무렵 ‘급박뇨’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영화 <그린 마일>을 보면 주인공 톰 행크스가 ‘요석증’으로 소변 눌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이 대목에 그 이야기가 나오냐고요? ‘급박뇨’와 ‘요석증’은 반대의 경우라고요? 아, 그렇군요. 여하튼 비뇨기 증세를 순사에게 이야기했더라도 상황(‘5만원 범칙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거라고요? 그 역시 그렇군요.

어쨌거나 이 부끄러운 노상방뇨(路上放尿) 경험을 엊그제 세상을 달리한 대학 동창생을 조문하러 찾은 영안실에서 친구들에게 얘기했어요. 원래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이런저런 ‘유쾌한’ 딴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잖아요. 예닐곱이 모인 자리에서 절편, 육개장, 홍어무침에 소주 한잔을 곁들여 주거니 받거니. 나 역시 묵묵히 음식만 축낼 수는 없어 기분 전환겸 재미있으리라 생각하여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지요. 친구들의 수용맥락겸 핀잔은 각인각색이었습니다.

“너 고생했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야 그런 이야기를 하필 상가에서 하냐?”
“넌 나이가 몇 살이냐? 아직도 철이 덜 들어 갖고.”
“지도를 그렸단 말이지. 난 이해한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냐. 그래서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근데 다리 한 짝은 들고 쌌냐? 그때쯤 길고양이 한 마리쯤 지나가지 않던?” 

마지막 개와 고양이 대사는 내가 꾸며낸 말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다 가정하고서요. 설마 그렇게 이죽대기야 했겠어요? 그래도 친구 사이인데. 사실 마지막 말은 나 자신을 향한 자조 섞인 푸념이랍니다. 자책성 혼잣말은 이어집니다. "저런, 그래야 그림이 사는데."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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