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숲의 소나무 [정숭호]


www.freecolumn.co.kr

화담숲의 소나무

2017.08.29

이 뒤틀린 소나무 모습이 며칠째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웅리, 흔히들 곤지암 리조트라고 부르는 ‘화담숲’에서 봤습니다. 화담숲은 LG그룹이 2006년 조성한 곳입니다. 40여만 평의 부지에 우리나라 토종 나무들과 꽃, 민물고기와 곤충을 편히 볼 수 있게 모아놓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란한 탈 것과 시끄럽고 번쩍거리는 공연장, 너저분하고 우리나라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의 노점상과 음식점 따위가 없는 ‘자연친화적 테마파크’여서 차분히 생각에 잠기며 다닐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소나무 정원’이라고 이름 붙은 구역에는 이 소나무 말고도 수십 그루의 뒤틀리고 비비 꼬인 소나무들이 신기하고 괴이한 모습으로 바위 사이, 언덕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 소나무만큼 내 눈길을 끌지는 않았습니다. 분재(盆栽) 같지만 바로 옆 ‘분재정원’에서 수백 점의 분재를 전시하고 있으니 분재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말을 돌리지 않고, 배배꼬지 않고 바로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화담숲을 다녀온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이 소나무가 눈앞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은 구부러지고 비틀린 모습을 보는 순간 떠올랐던 대다수 인생들의 축도(縮圖)와, 우리나라 역사의 굴곡이 눈 속 깊이 박혔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뒤틀리고 비꼬인 소나무들도 많았지만 이 나무처럼 이런 연상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고생하며 자란 흔적이 역력합니다. 땅바닥을 뚫고 나온 뒤 한참 동안은 위로 곧게 잘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무슨 일을 만났는지 옆으로 누워 몸을 뻗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아래로 거꾸로 처박혀 태어났던 땅바닥을 향해 내려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힘겹게 옆으로 방향을 틀어 겨우겨우 위로  올라가면서 큰 가지 두 개로 나뉘고 거기에 뾰족뾰족 솔잎이 달립니다.

그리 크지도 굵지도 않은 이 소나무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뭐가 이 소나무를 저리도 괴롭혔나! 자연 상태에서 바람과 눈비를 피하려다 저런 모습이 됐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보았는데, 여러 차례 구부러지고 뒤틀린 게 기구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저렇게 자랐다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겁니다.

구부러진 마디마다, 뒤틀린 자리마다 겪어보지 않은 처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서러움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막힌 곳은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자란 부분입니다. ‘나무란 두 팔 벌려 위로 자라는 생명인데, 해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존재인데, 또 위로 가지 못할 경우라면 옆으로 길 수야 있겠지만 저렇게 땅을 향해 거꾸로 내려가는 경우란 무엇인가? 이승보다 저승이 좋았단 말인가? 사람으로 치면 어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단 말인가?’ 

‘저 소나무도 억지와 궤변, 강압에 짓눌려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야만 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까지 해봅니다. 구체적 사례를 열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억지와 궤변이 순리와 선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했을 때 개인이라면 일생이 뒤집어지고, 역사라면 거꾸로 흐른 적이 멀리는 물론 가까운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는 다시 해를 향해 자라고, 사람은 재기에 성공하고, 역사는 바로잡혀 다시 힘차게 흘러가기도 하겠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합니까? 

소나무는 기상(氣像)과 기개(氣槪), 굳은 의지를 나타낼 때 자주 비유되나 이 소나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가 쫙쫙 뻗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지 이렇게 비꼬이고 뒤틀린 모습의 나무는 아닐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멋있고 아취(雅趣)있게 자랐다며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할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라면 ‘다시는 고생하지 말자’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역할이면 모를까, 멋있다고 옆에  둘 생각은 없습니다. 

겨우겨우 이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저 소나무, 이제 다시는 옆으로도, 아래로도 자라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진작부터 곧게 하늘로 뻗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소나무의 굽은 모습에 대해 이런 질문도 해보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은 레드라인을 스스로 뭉개기라도 해야 했단 말인가?' 소신과 각오와 맹세가 담긴 '희망'을 포기해야 했을 때의 참담함은 큰 응어리를 만들고, 희망의 주인공이 나아가려던 길의 방향도 바꾸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ICBM과 관련한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설왕설래들이 뒤늦게 떠올라 하게 된 생각입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고생하며 자란 흔적이 역력합니다. 땅바닥을 뚫고 나온 뒤 한참 동안은 위로 곧게 잘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무슨 일을 만났는지 옆으로 누워 몸을 뻗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아래로 거꾸로 처박혀 태어났던 땅바닥을 향해 내려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힘겹게 옆으로 방향을 틀어 겨우겨우 위로  올라가면서 큰 가지 두 개로 나뉘고 거기에 뾰족뾰족 솔잎이 달립니다.

그리 크지도 굵지도 않은 이 소나무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뭐가 이 소나무를 저리도 괴롭혔나! 자연 상태에서 바람과 눈비를 피하려다 저런 모습이 됐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보았는데, 여러 차례 구부러지고 뒤틀린 게 기구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저렇게 자랐다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겁니다.

구부러진 마디마다, 뒤틀린 자리마다 겪어보지 않은 처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서러움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막힌 곳은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자란 부분입니다. ‘나무란 두 팔 벌려 위로 자라는 생명인데, 해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존재인데, 또 위로 가지 못할 경우라면 옆으로 길 수야 있겠지만 저렇게 땅을 향해 거꾸로 내려가는 경우란 무엇인가? 이승보다 저승이 좋았단 말인가? 사람으로 치면 어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단 말인가?’ 

‘저 소나무도 억지와 궤변, 강압에 짓눌려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야만 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까지 해봅니다. 구체적 사례를 열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억지와 궤변이 순리와 선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했을 때 개인이라면 일생이 뒤집어지고, 역사라면 거꾸로 흐른 적이 멀리는 물론 가까운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는 다시 해를 향해 자라고, 사람은 재기에 성공하고, 역사는 바로잡혀 다시 힘차게 흘러가기도 하겠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합니까? 

소나무는 기상(氣像)과 기개(氣槪), 굳은 의지를 나타낼 때 자주 비유되나 이 소나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가 쫙쫙 뻗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지 이렇게 비꼬이고 뒤틀린 모습의 나무는 아닐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멋있고 아취(雅趣)있게 자랐다며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할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라면 ‘다시는 고생하지 말자’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역할이면 모를까, 멋있다고 옆에  둘 생각은 없습니다. 

겨우겨우 이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저 소나무, 이제 다시는 옆으로도, 아래로도 자라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진작부터 곧게 하늘로 뻗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소나무의 굽은 모습에 대해 이런 질문도 해보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은 레드라인을 스스로 뭉개기라도 해야 했단 말인가?' 소신과 각오와 맹세가 담긴 '희망'을 포기해야 했을 때의 참담함은 큰 응어리를 만들고, 희망의 주인공이 나아가려던 길의 방향도 바꾸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ICBM과 관련한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설왕설래들이 뒤늦게 떠올라 하게 된 생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게스트칼럼 / 노경아

압존법(壓尊法)에 눌린 K를 구하다

“난 우리 애가 걷고 뛰는 것도 못 보면서 그 시간을 여기서(대한일보 스플래시팀) 보냈어. 내가 좋은 부모는 못 돼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한테 동기를 줘.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을 거라는 확신. 나한텐 그게 동기다.”

생후 27개월 아이를 둔 일간지 사진기자 오유경의 말이 가슴으로 들립니다. 거대 비리 권력에 맞서 올바른 기사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오 기자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같은 팀의 후배에게 한 진솔한 말입니다. 드라마 ‘조작’입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빠져 월·화요일을 기다리는(맥주를 준비하고!) 요즘입니다. 

영화감독인 지인은 “난 ‘조작’을 보다 궁금한 게 생겼어요. 기자들은 상사를 부를 때 정말로 ‘님’을 빼나요?” 하고 물어봅니다. 맞습니다. 언론은 차장, 부장, 국장은 물론 주필, 사장도 ‘님’을 빼고 부릅니다. 말 자체가 호칭이자 존칭이기에 ‘님’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 내부에서는 현장에서 취재할 때 기자는 독자를 대표하기에, 기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ㆍ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도 ‘선배님’이 아니고 선배입니다. 존칭이 포함된 말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것은 ‘간결성’이라는 언어의 가치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간결성 등 언어적 문제를 떠나 ‘직급+님’의 호칭은 일반 기업에서도 듣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자율적 조직 문화를 확산해 신속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대신 ‘이름+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프로’라 칭하기도 하고, 존칭 없이 영어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호칭만 바뀐다고 조직이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호칭에서의 직급 파괴 바람 자체가 제겐 몹시 신선하고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그건 그렇고 압존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 S신문사 차장인 후배 K는 압존법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더군요. 국장(저도 아는 사람)한테 보고하는 과정에서 “제 부장께서 지시하신 사항입니다”라고 말한 이후 ‘언어 예절도 없는 놈’으로 찍혔다네요. 

압존법은 한자로 壓尊法이라 씁니다. 존대하려는[尊] 마음을 눌러서[壓] 하지 않는 화법(話法)입니다. 한마디로 청자(聽者) 중심의 높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윗사람이더라도 청자보다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높이지 않아 듣는 이를 존중해 주는 화법이지요. 예를 들면, 손자가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를 높이지 않아야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가 아닌 “할아버지, 아버지가 왔습니다”라고 말해야 언어예절에 맞는 것이죠.

그런데 K의 국장은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K가 지나치게 높이니 불쾌했던 것입니다. 국장도, K도 이해가 갑니다. 압존법은 논리적으론 간단하지만 실생활에선 괴로운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표준화법에서 압존법은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화자(話者)를 배려해 어느 정도의 높임을 허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K의 상황이 궁금하시다고요? 제가 K의 국장을 만나 잘 해결했습니다. (그 국장은 K와 제가 아는 사이인 줄 모른답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압존법을 슬쩍 꺼냈죠. 그리고 “압존법은 가족이나 사제(師弟) 간처럼 사적(私的)이고 친밀한 관계에만 적용됩니다. 직장 등 공적(公的) 관계에는 압존법이 적용되지 않죠. 워낙 곤란한 상황이 많아서요”라고 말하니, 그 선배 “어이쿠! 내가 최근에 크게 오해한 일이 있었네” 하더라고요. 우리말로 먹고사는 후배가 한 말이니 신뢰가 갔던 거죠.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 요즘 표준 언어예절은 압존법과 관련해 가정에서도 엄격히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참 아랫사람이 그 바로 윗사람을 높여도 그저 ‘허허허~’ 웃으며 지나가세요.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교열팀 차장. 우리말 칼럼인 ‘라온 우리말터’ 연재 중.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