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대란의 궁극적 해법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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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대란의 궁극적 해법

2017.08.28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자 앞앞에 알 낳는 기계를 하나 씩 가지고 있습니다. 장소도 차지하지 않아 A4 용지 반 장 크기의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기계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24시간 밤낮으로 백열전구를 켜놓고 값싼 사료와 물만 공급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해두면 기계 꽁무니에서 계란이 시시때때로 뽑아져 나옵니다. 

현재 전국민에게 보급된 기계는 총 5,300만대입니다. 이 기계를 24시간, 365일 가동시켜 한 사람 당 연간 300개의 계란을 공급받게 합니다. 기계의 수명은 수개월에서 길어야 2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지만 폐기되는 순간 즉각 다른 것으로 교체가 되니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고장이 난다면 그대로 땅에 파묻으면 됩니다. 또한  기계가 노화되어 더 이상 계란을 만들어 낼 수 없을 때는 버리는 대신 기계 자체를 잡아 먹어버릴 수가 있으니 효율적이다 못해 환상적이기까지 합니다(관리 참 쉽죠~잉). 오죽하면 기계의 이름이 ‘치느님(치킨+하느님)’일까요? 

그런데 이 기계에 진드기라는 이물질이 끼여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민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 기계를 갖고 있으니까요. 실상 기계는 24시간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작동 방지를 위해 항생제를 상시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살충제와 농약 따위를 추가로 처방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계에 투입한 살충제가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그것이 기계가 아니라 ‘놀랍게도’  생명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A4 용지 크기에 ‘꽂히다시피’ 놓여 있는 알 낳는 기계가 실은 인간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였던 것입니다. 땅 속에 파묻어 버린 것은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생목숨이 붙어있는 닭이었다는 끔찍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원래는 수명이 평균 7~13년,  길면 20년도 된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는데, 제 명을 살게 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해서 그저 마당에 자유롭게 풀어두기만 하면 된다니, 닭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네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300개 가량의 계란을 먹는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5,300만 마리의 닭이 그 필요를 채우고 있으니 결국 국민 일인당 자기 닭 한 마리씩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고, 그 닭은 억지로 알을 ‘뽑아내야’하는 기계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생명을 주제로 한 소설 『강치의 바다』를 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1900년대 초까지 독도를 까맣게 덮었던 바다사자, 강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많던 강치가 일제 강점기 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1950년대 중반경,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강치잡이로 인해 맑고 싱그럽던 독도에는 연일 피 냄새가 진동하고, 벌건 속살을 드러낸 강치의 사체들이 밀려들면서 걸쭉하게 변한 독도 앞바다에는  피안개가 피어오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산 채로 강치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내고 기름을 짠 후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를 그대로 바다에 던졌습니다. 

구두와 가방 등을 만들 수 있는 강치 한 마리의 값은 당시 황소 열 마리 값이었습니다. 돈에 혈안이 된 일본은 강치잡이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느라 말 그대로 강치의 씨를 말렸습니다. 덩치가 큰 것들뿐만 아니라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어린 강치들도 잔인하게 때려죽이고, 어린 것들을 먼저 잡은 후 새끼를 구하려고 오는 어미를 동시에 사냥하는 악랄한 덫을 놓았습니다.

소설은 무자비한 도륙과 처참했던 대학살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어린 강치 한 쌍이 천신만고 끝에 호주 연안에서 구조되고, 일생을 동물원에서 보낸 후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강치를 고향 독도로 돌려보낸다는 줄거리로, 생명의 존엄성과 그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몇 만마리 강치뿐일까요? 우리가 산 채 땅에 파묻은 닭은 몇 백만 마리입니다. 이제 그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동물은 인간과 생명을 나눠 가진 존재이며, 인간과 동물은 불가분하게 생명그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닭이 흡인한 살충제가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재앙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책임은 물론, 그 결과도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우리는 지금  계란이 오염되었네, 친환경 계란에도 속았네, 계란이 안 팔리네, 값이 몇 배로 뛰었네 하는 따위의 푸념, 엄살, 공포, 짜증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타생명에 한 짓을 반성하며,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때입니다. 그것이 계란대란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해법에 이르는 첫걸음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대 철학과를 나와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는 자유칼럼그룹과 자생한방병원 등에 기고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비롯,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마르지 않는 붓(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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