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수상도시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 라 페니체(La Fenice)


라 페니체 La Fenice


‘얼렁뚱땅’과 ‘대충주의’ 이탈리아

철저하고 집요하며 깐깐한 면모도


  곳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얼렁뚱땅’과 ‘대충주의’로 우리를 당황시키는 이탈리아지만, 동시에 어떤 쪽에서는 독일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하고 집요하며 깐깐한 면모를 보이는 게 그들이기도 하다. 


(페니체 극장의 수수한 파사드와 화려한 내부)


특히나 멋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요한 추구는 종교적인 열망과 본능적인 감각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가령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의 깎아 지른듯한 세련미는 물론이고, 시에나의 남쪽 - 남토스카나 일대의 광활한 포도원에 점점이 널린 농가에서도 그들만의 고졸하면서도 멋스러운 감각이 구석구석에서 번뜩이며 빛난다.


물론 베네치아도 똑같다. 비록 몰려드는 너무 많은 수의 관광객들과 그들 못잖게 엄청난 상술로 무장한 상인들이 뒤얽혀 매일 지옥도를 연출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아름다운 수상도시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의 이름은 라 페니체(La Fenice)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힌다. 이름은 ‘불사조 극장’이라는 뜻인데, 18세기에 건립된 유서 깊은 석조-목조 공연장이다. 건물 밖은 아무 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일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주세페 베르디의 최고 걸작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하여 예술사를 대표하는 명작들이 세계 최초로 공연된 곳이다. 베니스 영화제의 시상식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우리나라 영화인들도 이 극장에서 여우주연상과 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한 적이 있다. 


(방화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된 페니체 극장)


그런데 ‘잿더미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불사조 전설에서 이름을 따온 탓일까. 이 극장에서는 유독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 모두 세 번에 걸친 대화재를 겪었다. 특히 1996년에 일어난 방화사건은 끔찍한 것이었다. 극장의 보수를 맡은 업자들이 기한을 지키지 못해 벌금이 많이 나오자 일부러 불을 낸 것이다. 전기설비 정도만 고장 내려던 의도는 빗나갔다. 극장은 대리석 기둥만 남기고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전 세계에서 통곡에 가까운 탄식이 쏟아졌다. 그 자체로 예술작품인 극장이었다. 이것이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 참에 현대적인 디자인의 새 극장을 짓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정부는 결연했다. 그들의 복원 철학은 짧지만 명확하다. ‘코메라, 도베라’(Com’era, Dov’era). 원래 있던 자리에(Dov’era), 옛날 모습 그대로(Com’era) 다시 짓는다는 것이다. 복원은 느리지만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정교한 조각 작품으로 가득 찬 내부 인테리어는 영화를 참고했다.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가 남긴 1954년 작 <센소>에는 극장 내부의 모습이 상세히 등장한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센소 Senso>의 오프닝.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중 격정적인 테너 아리아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Di quella pira’가 연주되고, 뒤이어 객석에서는 격렬한 데모가 일어난다. 

베네치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19세기 초가 배경이다.)


복원을 마친 ‘불사조’는 2004년에야 다시 공연을 재개하였다. 복원 후에 몇 번을 찾아가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다. 극장의 내외관이 옛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되살아나 있었다. 더욱 경이로운 건 분위기마저 복원했다는 점이다. 새로 연 극장 특유의 들뜨고 번쩍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아한 정서가 극장 전체를 감돌고 있었다. 그들은 물리적인 공간 뿐만이 아니라 거기 서린 기억까지 복원해낸 듯 했다. 누가 이탈리아 사람들을 얼렁뚱땅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자신의 문화에 관한 한 가장 완고하고 집요한 완벽주의자들이었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제1막 피날레 아리아 ‘언제나 자유롭게 Sempre libera’, 소프라노 예카테리나 

바카노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발코니


kcontents



.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