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숍의 허실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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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 숍의 허실

2017.08.17

유사 상표 업주가 패소할 정도로 생필품 매장인 천 원 숍은 서민생활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부서진 서랍을 고정하기 위한 초소형 모서리 앵커, 물을 보내는 비닐호스를 이어주는 연결 핀, 개털을 빗겨줄 빗 등 ‘이걸 어디서 팔지’ 하고 의문이 들 때 가보면 거의 다 찾아냅니다. 

몇 년 전에 스마트폰에 내장된 터치 펜을 잃어버렸습니다. 언젠가 빠질 거라고 걱정했었는데요. 제조회사에서 사려니까 2만 원 이상이었죠. 그런데 인천지하철의 어느 천 원 숍 매장에서 정말이지 1,000원 하는 터치 펜 겸 볼펜을 샀습니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중국제였습니다. 물론 주문자 생산 방식도 있다고 하지만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중국은 국내의 소비인구가 방대하니까 규모의 경제가 잘 작동하여 세계의 공장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 염가의 많은 생필품을 공급해줍니다. 접이식 국산 등산 의자를 유명한 마트에서 1만 5천 원에 샀습니다. 배낭에 쏙 들어가는 소형은 다 팔렸다고 하더군요. 그 소형 의자를 천 원 숍에서 2천 원에 샀습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뭘 하고 있을까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천 원 숍을 말하는 것은 최근 ‘생활비 줄이려고 천  원 숍을 애용하는 문 대통령’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월급이 2천만 원 좀 넘으니 사업을 하는 기업 총수들에 견주면 보잘것없죠. 천 원 숍에 누가 가서 뭘 살까 궁금했는데 보좌진의 말을 인용한 어느 신문 기사를 실로 오랜만에 정독해보니 각종 세제가 그곳이 싸다면서 친절하게도 생활용품을 다이소 경복궁점에서 산다고 쓴 것입니다. 

천 원 숍은 국적 불문, 제품을 싸게 팔아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이라면 그곳에서 무엇을 팔고 있고 그 제품의 국적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다이소의 2016년 매출액은 1조 1,350억 원이고 순익은 자본금 32억 원의 거의 30배인 891억 원이었습니다. 작년 성장률이 거의 30퍼센트입니다. 대체로 500원에서 5,000원에 이르는 6개 가격으로 몇 만 종의 생필품을 밤 10시까지 파는 천 원의 힘이 얼마나 무섭게 한 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웠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신도시에는 4개 층을 통째로 쓰는 천 원 숍 빌딩이 보이고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 앞 점포에도 줄을 서서 물건 값을 계산합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연간 7,0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려고 각국에 압력을 가합니다. 한국에게 10만 개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며 한미FTA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종훈 옛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익을 위해 아주 잘 된 한미FTA를 ‘을사늑약’이니 ‘매국노’이니 하면서 비난을 퍼부었던 당시 야당 정치인들은 이 협정을 폄훼한 데 따른 사과 한마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정부·여당이 되었으니 어떻게 트럼프의 개정 요구에 대처할 것인지 두고 볼 일입니다. 

미국 무역 적자의 절반가량은 중국 탓이고 일본, 독일, 멕시코가 10퍼센트 안 되게 비슷하고 그 뒤에 200억 달러 대의 흑자국인 한국이 있습니다. 미국 무역적자의 약 60퍼센트는 소비재 수입 때문이니 대미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는 대체로 물건 제조국가입니다. 독일, 일본은 자동차로, 중국은 컴퓨터와 통신 장비와 온갖 생필품으로,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무선전화기 등으로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비행기, 인터넷을 발명한 나라인데도 항공우주산업만이 수백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중이니 단기간 내의 무역적자 해소는 어려운 듯합니다. 

제조업을 중시해야 할 이유입니다. 제조업이 끝났다면서 동북아 금융허브 운운하던 허황된 꿈은 빨리도 접혔습니다. 요즘 김포 시내버스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봅니다. 피부색으로 동남아시아나 동 유럽인들로 보이는 이들도 있고 풍성한 원피스 같은 갈라비아 옷에 샌들을 신은 남자도 보입니다. 얼마 전엔 세네갈에서 온 청년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습니다. 알루미늄 공장에 다니는데 기계에 손가락을 다쳤다고 그들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얘기했습니다. 공단 부근이니 그들이 우리나라 중소기업 공장을 지탱하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대표는 최근 노량진 공시촌을 탐방한 후에 젊은이가 공무원 시험에만 열중하는 나라는 투자처로 흥미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대기업은 들어가기 어렵고 중소기업은 일이 힘든데 대우도 낮습니다. 사장들은 돈이 안 벌리니 월급을 올려주지 못하죠. 해서 정부가 최저임금을 16%나 올리면서 4조 원을 세금 등으로  중소기업에 지원해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산업의 뿌리인 중소기업은 좋은 물건을 만들어 잘 팔아야 하는데 소비자들은 그런 어떤 물건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7~8년 전 서울 목동의 중소 백화점에서 정말 우연히 국산 무선 마우스 겸 빔 포인터를 산 적이 있죠. 강의에 필요한 것을 어디서 팔지 궁금했는데요.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활성화는 부처를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끔 케이블 텔레비전의 지역방송 시간에 우리가 모르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목이 터져라 반복하는 광고를 봅니다. 

중소기업부는 여러 가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있겠지만 홍보와 판로 확장을 위해 근본적으로 중소기업 제품 전문 오프라인 매장을 전국 곳곳에 대대적으로 세워 “이런 국산 물건은 여기 다 있소”라고 인식시키면 소비자와 생산자, 국가 모두 좋지 않을까요? 중소기업 시장을 외국에 먹히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법입니다. 아무리 무역대국일지라도 최대한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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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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