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황우석 사건’, 김수환 추기경 눈물 잊었나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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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우석 사건’, 김수환 추기경 눈물 잊었나

2017.08.16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이 눈물을 흘리며 우셨던 사건을 우리 모두 잊은 것 같습니다. 2005년 12월 중순 우리 사회가 ‘황우석 사건’으로 한창 들끓고 있을 때 '황우석 사태를 이야기하다가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김수환 추기경'이란 설명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이 한 손에 안경을 들고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이 언론 매체에 소개되었습니다. 아직 필자의 뇌리에서 퇴색하지 않은 몇 컷의 사진 중 하나입니다. '황우석 사태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고개를 숙인 채 3분 정도 눈물을 흘리며 침묵하다가 “우리 모두의 문제… 우직하고 정직하게…”라며 무거운 심정을 토로했다(<평화신문>, 2005. 12. 16). 당시 우리 사회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참고: 사진자료)

그런데 우리 사회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와 같은 ‘황우석 사건’이 근래 다시 회자되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우석 사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물, 즉 공동 저자에 공동 협력자이던 박기영 씨가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선임되는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황우석의 망령’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필자가 ‘황우석 사건’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 기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황우석의 연구 성과와 관련한 ‘좋은’ 기사가 국내 언론을 장식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해하던 즈음, 의사들이 읽는 의협 기관지에 과학적 연구 결과에 너무 흥분하기보다 조금은 차분히 지켜보자는 취지의 칼럼을 송고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황우석의 대국민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필자는 급히 편집 담당자에게 연락해 해당 칼럼을 잠시 보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황우석의 기자회견을 주의 깊게 시청했습니다.

기자회견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차분히 읽어나가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필자 역시 모든 국민이 그러하듯 ‘부디 아무런 문제도 없길’ 바라는 심정으로 TV를 지켜보았습니다. 바람대로 큰 문제가 없는 듯하고 설득력 또한 있어 안도의 숨고르기를 하려던 차에 참석 기자들과의 질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줄기세포를 몇 개 확보하고 있습니까?” 이에 황우석은 “10개면 어떻고, 4개면 어떠냐?”는 취지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순간, 필자는 편집실에 전화를 걸어 그 칼럼을 예정대로 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10개면, 어떻고, 4개면 어떠냐?”는 자연과학자다운 답변이 결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한 미국 동료가 줄기세포와 관련한 <뉴욕타임스>(2005. 12. 04)의 사설을 보내왔습니다. “한국의 복제 위기(South Korea’s Cloning Crisis)”라는 제목의 칼럼이었습니다. 칼럼을 읽으면서 필자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국민적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담하였습니다. 그네들의 부정적 논리는 이미 짐작한 터였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칼럼 전체에 거짓(lied, lies, lying)이라는 낱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왔습니다. 보통은 “당신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는 “믿기 힘들다”는 식의 간접화법을 쓰기 마련인데,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또는 “그것은 거짓말이다”라는 식의 직설화법을 읽자니 참담함을 넘어 서글프기 그지없었습니다. 그것도 세계적 언론 매체인 <뉴욕타임스>의 사설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당혹스러운 가운데서도 <뉴욕타임스>가 작심하고 실은 듯한 그 칼럼이 향하고 있는 매서운 질타의 화살은 황우석과 국적을 같이하는 우리 국민 모두가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렴치하게도 과학적 결과를 조작한 황우석 사건은 국내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적인, 세기의 사기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황우석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을 국내 연구 진행의 총책으로 선임하는 해프닝을 벌였으니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국내 과학계가 표현하기 어려운 큰 충격을 받을 만도 합니다. 

혹시 인사 책임자가 ‘황우석 사기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시 ‘내 편 돌보기’ 차원에서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당혹스러운 사건이라, 당시의 상황을 한 번 되새겨보았습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이번 사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필경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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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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