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에서 효(孝)를 빼면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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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서 효(孝)를 빼면

2017.08.11

국회가 만드는 법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려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바엔 차라리 노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다른 13명의 의원들과 함께 대표발의한 인성교육진흥법 개정안이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이 법은 2015년 7월 시행 이후 2년밖에 안 된 신생법입니다. 당시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은 인성교육의 핵심적 ‘가치와 덕목’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교육적으로 거룩한 여덟 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8개항의 가치 가운데 유독 ‘효’만 빼고 ‘정의와 참여, 생명존중과 평화’를 추가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유림 등에서 ‘패륜 입법’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박 의원은 “핵심가치와 덕목이 지나치게 전통적 가치를 우선하고 있어 효를 뺐다”며 “효가 예에 포함된다고 본 것이지 중요하지 않아서 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또 촛불혁명에서 나타난 시민정신을 반영했다고 밝혔는데 그것이 ‘정의와 참여’가 새로운 가치로 추가된 배경일 것입니다. 촛불혁명 정신은 문재인 정부 들어 거의 모든 정책 추진의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사드 반대에서부터 탈원전, 전교조 합법화, 최저임금 인상, 통진당 이석기 석방, 부자 증세에 이르는 일련의 정책제안을 하는 세력들은 저마다 그것이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성교육이 거기에서 빠진다면 오히려 어색해질 판입니다.

수직적인 사회에서 수평적인 사회로의 이행을 명분으로 삼기도 합니다. 효는 충(忠)과 합쳐져 충효사상으로 존속돼 왔습니다만 충이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수직으로 규정한 것이라면, 효는 부모 간, 가족 간에 수직과 수평이 얽혀있는 쌍방향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이 현행법 제정 때 인성의 덕목 중에서 충이 배제된 반면 효가 들어간 배경일 것입니다.

너무 범위가 넓어 우리 사회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막연한 예의 일부로 보기엔 효는 예 중에서 그나마 규범적 구체성을 갖는 덕목입니다. 명절 때의 귀성행렬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대표적인 효의 잔상(殘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인성교육이 법으로 규정되는 것에 찬동하는 편은 아닙니다.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인성이 살아난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강제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인성파괴 현상이 심각하다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회의 입법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처방이기보다 뭔가를 했다는 생색용 또는 면피용일 때가 많은데 인성교육법의 제정도, 개정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백행(百行)의 근원으로 여겨져 온 효를 빼면 인성에서 무엇이 남는가를 생각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통가치의 급속한 붕괴로 온갖 사회문제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효 하나만이라도 건재하다면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봅니다. 역설적이게도 효가 붕괴됐기 때문에 빼버린 것이라고 했다면 솔직하다는 얘기라도 들었을 것입니다.

인성교육은 고상한 목표와는 달리 교육현장에서도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입시과목도 아닌 인성교육에 눈을 돌릴 교사나 학생이 있을까요? 교사의 절반 정도가 이 법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법의 의무규정으로 인해 교사들은 업무가 늘었다고 불만이고, 인성교육의 외부 위탁과 전문인력 양성과 관련해선 잡음이 많았다고 합니다. 개정안이 이러한 불합리한 부분들을 바로잡은 것은 긍정적이나, 인성의 개념에서 효를 빼고 섣부른 이념을 집어넣어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작년도 정부의 인성교육 예산은 6억5,000만 원이었습니다. 전국 2만여 개에 이르는 유치원 초중고교와 740만 명에 달하는 학생 수를 감안하면 한 학교당 3,000여 원밖에 안 되는 이 예산으로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회가 인성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것은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하지 공론(空論)의 소재만 제공하는 것이어선 안 하니만 못합니다. 국회가 현 단계에서 해야 할 일 중에서 시급한 것은 인성교육 예산을 확보해 주는 것일 듯합니다.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이마뉴엘 마크롱(39)은 프랑스 의회 의원을 900명 선에서 600명 수준으로 3분의1을 줄이는 정치개혁을 추진 중입니다. 그는 의원이 많다 보니 쓸데 없는 법들만 많아진다면서 의회는 입법활동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어찌 프랑스만의 일이 겠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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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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