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공격' 견딜 수 있을까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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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공격' 견딜 수 있을까

2017.08.07

가히 폭염의 위력을 과시하는 계절입니다. 한낮의 기온이 무려 40도까지 치솟는 판이니, 낮 동안에는 줄곧 사우나 온탕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사우나에서 잠깐 땀을 빼고 시원한 물로 뿌려주면 온몸이 상쾌해지기 마련이지만 몇 시간이고 계속 탕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면 그만한 곤욕도 또 없을 것입니다. 마치 고문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바로 이번 여름 찜통 날씨로 고문받고 있다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주말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수은주가 섭씨 39.4도까지 올랐다는 경기도 여주와 경남 창녕의 경우가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밀양·합천·청도·대구·광주·담양에서도 37도를 웃도는 기온을 나타냈고, 서울도 거의 전역이 36도를 넘어섰습니다. 올여름의 공식 최고기온은 이미 지난달 13일 경북 경주에서 39.7도로 기록된 바 있습니다. 습도가 높은 데다 땡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면서 전국이 가마솥처럼 펄펄 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이니만큼 툭하면 폭염특보가 발령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는 ‘폭염경보’가 발령되며, 33도 이상일 때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번 여름만큼 날씨에 유의하라는 핸드폰 메시지를 자주 받아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핸드폰 메시지가 아니라도 노약자들은 야외활동에 나설 때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고온 환경에 계속 노출될 경우 체내의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탓에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체온이 40도가 넘어가게 되면 위험 상태에 이르는 것이겠지요. 폭염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날씨와 전쟁을 치른다는 얘기가 단순히 표현상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한밤중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잠을 설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불쾌지수’라는 표현도 사치에 불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폭염이 한반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는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의 기온이 47도까지 올랐으며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일대도 40도 가까이 치솟았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는 가뭄까지 겹쳐 제한급수가 시작됐고, 교황청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바티칸 광장의 분수대 가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웃 나라 중국의 상하이, 항저우, 난징 등에서도 40도를 웃도는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름철마다 무더위가 위력을 더해가며 압박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걱정입니다. 과거에도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체로 국지적이었던 데다 하루 이틀로 끝나는 현상이었습니다. 1999년 이전 서울 지역에서 최고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이 연평균 113일이었으나 2000년 이후 122일로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1년 365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름 날씨를 나타내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금세기 후반에 이르면 한반도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5~6도 이상 오를 것이라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습니다.

‘기후의 보복’이 갈수록 혹독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소설과 영화로 숱하게 목격해 왔던 재난영화의 장면들이 언젠가는 우리 현실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이룩된 도시, 건축물, 도로 등 모든 지상 문명이 한낱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이며, 수중·지하도시 건설을 위한 다툼이 벌어지게 되겠지요. 달이나 화성을 차지하기 위한 우주 전쟁도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핵무기가 터지지 않더라도 지구의 기후변화가 인류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얘깁니다.

과연 이렇게 밀려드는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우리 인류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가장 큰 요인인 ‘온실 효과’를 막거나 늦추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북극 대륙의 얼음은 자꾸 갈라지고, 엘니뇨니 라니냐니 하는 심술궂은 기상이변도 계속될 것입니다. 폭염 현상은 하나의 곁가지일 뿐입니다.

전통적으로 온대기후대에 속해 있던 한반도의 기후 현상이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조짐도 상당히 엿보이는 단계입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론화 위원회’를 가동시켜야 합니다. 원자력발전소의 기동을 중단하느냐 하는 논의도 그러한 틀 안에서 다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점점 거세지는 폭염의 공격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정책적인 대응이 너무 협소하고 단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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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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