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마술피리 The Magic Flute : VIDEO


최후 오페라 '마술피리'

The Magic Flute


출처 想像의 숲 - Tistory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겨우 35세로 요절하기 두 달 전에 남긴, 그의 최후 오페라다. 한때는 (급이 그렇게 높진 않았지만) 궁정작곡가로 나름 위세를 떨쳤었고, 로렌초 다 폰테 같은 최고의 작가들과 작업을 하던 그였지만 그즈음에는 생계를 위해 무조건 많은 작품을 쏟아내듯 써야만했다. <마술피리>의 대본가 엠마누엘 쉬카네더는 재주꾼에 실력 있는 극작가였지만 그렇다고 고고한 예술가도, 심오한 작가정신을 지닌 진지한 문필가도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와 중부 유럽 일대를 떠도는 이런저런 동화와 설화를 짜깁기하고, 계몽주의 비밀결사의 몇 가지 코드를 집어넣어 일종의 느슨한 민중계몽극 스토리를 만들어 모차르트에게 넘긴다. 줄거리는 매혹적이었지만 앞뒤가 안 맞았고, 대단히 통속적이기도 했다.


Mozart Statue source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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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생명력을 부여한 건 역시나 모차르트의 음악이었다. 생존이라는 명제에 쫓겨, 피로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였다. 그는 매 장면마다 빛나는 선율과 깊이 있는 음악으로 동화 같은 캐릭터를 신화적 인물로 격상시켰으며, 엉성한 대본 때문에 생긴 느슨한 서사와 손발이 안 맞는 극 전개는 오히려 모차르트의 심오한 음악과 합쳐져 고도의 추상성과 모호한 상징성을 띤 격조 높은 음악극으로 재탄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서곡. 리카르도 무티 지휘, 빈필하모닉)


두 명의 남자가 진정한 인격완성을 목표로 가혹한 시험에 도전한다. 침묵의 계율을 준수하고 고통을 참아내며, 최후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왕자 타미노는 이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지만, 새잡이 파파게노는 불평불만이 가득이다. 그들의 모험은 한 편의 판타지 영화와도 같아서 마법의 아이템인 피리와 마술종이 주어지고, 숲 속에선 새와 들짐승들이 인도해준다. 사막에선 선지자들이 지친 두 사람에게 나태함을 꾸짖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용기를 전해준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이중적인 드라마이다. 어떤 이는 이 오페라를 밝은 동화로 해석하여 가족용 오페라로 소개한다. 또 다른 이른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 불리는 비밀결사의 입회과정이 내재된 상징주의 오페라로 해석한다. 모험과 도전의 동화 오페라 혹은 음모와 밀교의식으로 가득 찬 ‘모차르트 코드’식의 복잡한 상징 오페라. 어느 쪽이 이 작품의 진실된 모습인지는 그 누구도 단정하기 힘들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오페라가 우리에게 정말 재밌고 깊은 감동을 주는 명작이라는 사실이다.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일종의 캐릭터 오페라라 할 수 있는데, 왕자 타미노와 공주 파미나 커플은 단정하고 성실한 인물의 전형이다. 거기에 완전히 반대되는 코믹 캐릭터가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커플이다. 파파게노는 온갖 계율을 모두 어기고, 성실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중도포기를 마음먹는 나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 모차르트는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일까.


(모차르트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서 불타오르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자애로운 어머니에서 사악한 마녀로 돌변하는 밤의 여왕은 그로테스크하며, 사이비 교주로 소개되다가 나중에는 참 진리를 이끄는 선각자로 밝혀지는 자라스트로의 모습은 따뜻하고 자애로움이 넘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재기발랄하고, 또한 엄숙하며 동시에 지극히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마술피리>는 다면체의 만화경과도 같이 여러 색깔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들을 때마다 늘 새로운 느낌을 주는 놀라운 오페라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마술피리>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후속 작품의 집필을 진지하게 구상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스웨덴의 전설적인 거장 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영화로 된 <마술피리>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영국 최고의 지성파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가 현대화된 버전의 <마술피리> 영화로 다시 한번 잔잔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서구의 대표적 지성들이 한결 같이 이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몽의 어둠을 몰아내고 결국은 빛이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은, 야만과 억압에서 벗어나 계몽과 이성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유럽 근대 시민사회의 계몽주의적 이상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결한 왕자와 공주 커플 뿐만이 아니라 파파게노 같은 평범한 시민적 자아까지도 궁극에는 문명과 이성이라는 역사 발전의 성취를 함께 누린다는 넉넉한 세계관 또한 지식인과 철학자들의 열광을 불러 일으켰다. 


심오함과 아기자기함이 교차하고, 기품 있는 고아한 아름다움과 저잣거리의 골계미가 엇갈리며 눈과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이 오페라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된다. 특히 방학 시즌이면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로 ‘메르헨’적인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고, 연말이 다가오면 복잡하고 추상적인 메시지가 잔뜩 주입된 스타일로 다시 어른들을 유혹한다. 어느 버전이라도 좋다. 이 오페라는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2중창.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소프라노 

이레나 베스파로바이테)


서구의 근대는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뚜렷하게 빛을 향해 나아가는 담대한 정신들에 의해 쟁취되었다. 그 과정에서 예술의 대중화, 보다 폭넓은 소통 방식의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마데우스의 그 위대한 꿈은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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