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도 건설중인 원전은 손 안댔다"
최영해 동아일보 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어도 그곳은 평화로워 보였다. 건너편 강 언덕배기엔 주인을 기다리는 보트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발전소 냉각탑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연기는 일상의 장면일 뿐이었다. 주민들은 “6개월에 한 번 사이렌이 울리면 50마일(약 80km) 떨어진 인근 도시로 대피 훈련을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이 좋은 동네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38년 전인 1979년 3월 발생한 미국 원전 사상 최악의 사고현장,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얘기다.
최영해 동아일보 논설위원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4월 나는 그곳에서 원전을 둘러보고 주민들을 만났다. 냉각탑 4곳 중 2곳에서 허연 연기를 토해냈다. 상업운전 4개월 만에 사고를 낸 2호기는 정화처리 후 1993년 폐쇄됐지만 인근 1호기는 1985년부터 계속 돌리고 있었다. 사고 당시 주정부는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대피시켰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주민 10만여 명이 일시에 빠져나갔다. 운전인의 실수에 장비 고장까지 겹쳐 핵 연료봉이 녹아내렸으나 냉각펌프가 작동돼 대형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망자 한 명 없이 반경 16km 내 주민들이 가슴 X선 촬영 2∼3번 정도의 방사능에 노출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현장에 달려와 “새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29기 원전계획 가운데 짓고 있던 53기만 건설을 계속하고 나머지는 취소했다. 그래도 건설 중인 원전은 스톱시키지 않았다. 반핵운동이 확산되자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원전을 돌렸다. 세계 최대 원전국 미국이 갖고 있는 원전 99기 가운데 84기가 연장된 것이다.
스리마일섬 원자로와 같은 가압형이 한국형 원전이다. 사고 이후 안전장치가 대폭 강화된 신형으로 바뀌어 유사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미국은 한여름 도서관이나 공공시설 어디를 가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는다. “아무리 부자 나라라고 해도 이렇게 틀어도 되나” 하는 당혹감이 들 정도다. 원전에다 원유, 천연가스, 태양광, 셰일가스, 풍력, 석탄 등 전기 공급원이 풍부한 덕분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갑자기 사표를 낸 이유가 정전 때문이었다. 여름철 급증하는 전기수요에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장관이 옷을 벗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발전소 건설을 등한시한 탓이다.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이 걱정되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여론에 쫓겨 전기료를 깎아준 게 불과 1년 전 일이다. 삼복더위에도 공무원들이 선풍기와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일했던 나라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탈(脫)원전 정책의 설계자다. 청와대도 여당도 원전을 마치 괴물쯤으로 여긴다. 건설이 일시 중단된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은 공론화위원회 손에 달려 있다. 위원회 결정을 정책 선택의 참고로 활용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그대로 수용하겠다니 정부는 그럼 왜 있는가. 울주군민들은 원전 중단 반대 데모를 하고 있다.
자원빈국인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2기를 수출해 20조 원을 번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영국은 2, 3년 전부터 원전 수입국으로 한국과 중국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부단한 기술 축적으로 한국형 원전 가격은 미국이나 프랑스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산업의 쌀’인 원전을 지금 중단하면 앞으로 어떻게 수출할지 걱정이다.
“원전이 국회에 가면 정쟁(政爭)이 된다”는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오만한 발언에도 야당은 존재감조차 없다. “원전 개발 과학기술자들이 죄인 취급받고, 원전이 못된 물건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한국형 원전 개발에 앞장섰던 이병령 박사의 탄식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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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3/all/20170803/85643568/1?lbTW=d170b29e39eddccaca2546df3fa78fd#csidxb97843957fd371aad98f099975ced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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