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도용 사건에 대응하기 [고영회]


www.freecolumn.co.kr

건축설계 도용 사건에 대응하기

2017.08.03

부산시가 벡스코 부대시설 공모사업에서 새 사업자를 선정했습니다. 새로 선정된 사업자의 투시도는 전에 사업을 추진하다가 포기한 사업자의 투시도를 도용하여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는 전 사업자의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설계자가 이의를 제기하였고, 부산시가 사업자 선정을 취소해야 할지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KNN 보도, 각주1). 
또, 미국에 사는 박지훈 씨는 맨해튼에 세워진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ld Trade Center = 1WTC)'를 설계한 건축회사 에스오엠(Skidmore, Owings & Merrill = SOM)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건물에 삼각면체 유리 건물인 1WTC의 외관 및 내부 디자인이 박지훈 씨의 '시티 프런트(City front) 99(1999년 일리노이공대 건축대학원 석사 졸업 작품으로 122층 높이)'와 매우 흡사하여 도용을 주장했다 합니다(미주 중앙일보 보도, 각주2).

건축설계 도용문제를 짚어봅니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입니다. 건축설계도는 건축가의 생각을 담아낸 창작품입니다. 건축설계도는 건축가가 노력을 쏟아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건축설계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습니다.

영화 음악 소설 논문 그림 사진 같은 것이 도용이나 표절 시비가 걸리는 것에 비하면 건축설계 분야는 조용한 편입니다. 아마 설계 작업의 특성상 수많은 자료를 참조해야 하므로 건축가 스스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를 콕 찍어 압박할 수 없는 속사정도 있는 듯합니다. 또, 설계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모자란 탓이 아닌가 합니다. 대학 건축설계 강의에서 저작권 보호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1990년대 말 건축 전문잡지에 건축설계저작권 문제를 1년 동안 연재할 때 느꼈는데, 건축설계에서 일하는 분이 자기의 권리를 지키는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수나 현업 건축사로써 건축저작권 문제를 짚은 글이나 논문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건축, 나아가 건설 산업이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의외였습니다. 요즘에는 건축설계분야에서 문제가 심심찮게 떠오릅니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 지역 마스터플랜 사건, 한강 반포 세빛섬 사건, 한양대 종합기술원 설계 도용 사건 같은 것들이죠.

현상 공모 입상작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나?

설계를 완성하면 설계자에게 저작권이 생깁니다. 특허권은 권리가 하나뿐으로 심사를 거쳐 권리를 줍니다. 그러나, 저작권에서는 비록 작품이 같은 것이라도 스스로 창작한 것이면 내용이 중복되더라도 제각각 권리를 가집니다. 권리가 중복될 수 있는지의 측면에서 특허권과 저작권은 서로 다릅니다. 서로 모르는 음악가가 작곡했는데 두 소절이 거의 같은 곡을 작곡한 사례도 있었다 합니다.

예전 현상설계 약관에 “현상 공모에 참여하여 입상한 작품의 저작권은 공모한 발주기관에게 넘어간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이 조항은 불공정 약관이라 하여 무효라고 판단하고 발주기관에게 고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발주기관은 ①당선작에 대한 저작권 1회 이용허락권 ②전체 입상작에 대한 당해 설계경기 관련 전시·출판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만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건축사협회가 문제를 제대로 짚어 해결했습니다.

베낀 것 입증하기

저작권의 핵심은 내가 내 작품을 쓸 권리, 즉 복제권입니다. 어느 사람이 내 설계도를 베꼈다는 것은 저작권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베꼈다 아니다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상 전문 지식이 없으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건축설계를 알아야 베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상대가 베꼈다는 증거를 내지만, 재판부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법원의 전문성 문제입니다. 현역 판사 대부분 법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건축을 전공한 판사가 있다 하더라도 해당 사건을 맡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기술 사건을 다루는 전문 판사 제도가 없고, 기술 전문 법원도 없으니, 일반 사건을 처리하는 재판부가 맡아야 합니다.

전문분야의 사실 판단은 외부 전문가를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인입니다. 감정인은 사실 문제를 판단한다 하더라도 관련 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계저작권 문제는, 저작권 법리를 알고 건축설계를 같이 아는 사람이 판단해야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감정인은 전문지식과 공정성이 필수입니다. 법원은 감정인을 활용하지만, 그가 감정인으로 적격인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건설공사 분야 감정인에게 해마다 연수를 받게 합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기술판사제도나 기술전문법원이 생긴다면 판단을 둘러싼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쟁에 연루된 사람은 적격이 사람이 감정인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판단에서 잘못이 생기면 다툼은 2심에서 3심으로, 또 다른 사건으로 끝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분쟁은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게 가장 좋지만, 분쟁이 생긴 때에는 사실 대로 해결될 수 있게 챙겨야 합니다.

각주1: http://www.knn.co.kr/137908
각주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360596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mymail@patinfo.com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