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흔파의 '얄개전'에 관한 추억 [한만수]


www.freecolumn.co.kr

조흔파의 '얄개전'에 관한 추억

2017.07.20

요즈음에도 만화를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만화책을 쉽게 구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본소용 만화는 거의 출간이 되지 않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웹툰으로 연재했던 만화를 엮어서 비닐로 포장하여 서점에서 판매하는 만화가 있을 뿐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만홧가게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산골 면 소재지에도 만홧가게가 두 곳이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화를 거의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만화책 보기만 좋아한 것이 아니라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노트며 교과서의 여백에 선생님 모르게 만화를 그리다 보면 금방 수업이 끝나기 일쑤였습니다. 방과 후에는 집으로 가기 전에 먼저 만홧가게에 들러서 신간 만화가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신간 만화가 나온 날이면 머릿속에서 신간 만화 제목이 떠나지 않습니다. 만화 볼 돈을 구하지 못하면 만홧가게에 가서 앉아 있다가 신간 만화를 보는 아이 옆에서 같이 보는 걸로 갈증을 충족시켰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겨울로 기억합니다. 같은 반 친구가 만화책을 바꿔 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있는 소재지에 살고 있던 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십리 길을 걸어서 만화책을 교환했습니다. 오는 길에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오니까 날이 금방 어두워졌습니다. 눈은 쉬지 않고 내려서 오리 쯤 걸었을 때는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습니다. 

캄캄한 눈길을 걸으면서도 어서 집에 가서 만화책을 봐야지 하는 기대감에 추운지도 몰랐고 무서운지도 몰랐습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을 했을 때는 부모님과 형제들은 저를 찾아다니느라 저녁을 못 먹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다가 휴지를 넣어두는 통에서 표지가 없는 소설책을 발견했습니다. 

표지는 물론 앞부분의 몇 페이지가 찢겨 나간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책의 제목은 조흔파 작가가 쓴 “얄개전”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을 먹기 전에 '얄개전'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 ‘나두수’가 실제인물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거의 반나절 동안이나 빠져들게 만든 소설책의 매력이 너무 강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만화책 한 권 보는 데 10여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글자는 읽지 않고 그림만 보느냐는 말을 할 정도로 빠르게 봤습니다. 소설은 만화책 보는 시간과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이튿날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책을 읽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의 집에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은 교과서와 자습서뿐이었습니다. 

한참을 궁리하다 보니 학교 도서관에 책이 많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도서관에 있는 책은 장학사님이나 외부 손님들이 오실 때를 대비해서 서가에 꽂아둔 비치용이라서 대여를 하거나 읽게 할 수 없다는 대답만 했습니다. 

그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방과 후에 만홧가게에 들렀습니다. 놀랍게도 만홧가게에는 200여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두께가 1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들은 옛날이야기 책들이거나, '로빈스크로스의 모험', '신데렐라' 등 외국 작품을 번역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만화책은 시시해서 소설책만 읽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얄개전”처럼 웃기고 재미있는 책은 거의 없었고, 대게가 문학작품들이었지만 읽은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요즈음은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발간된 책의 종수는 45,213종입니다. 발간 권수는 85,018,354권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 인구가 51,069,375명이니까, 인구보다 많은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성인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9.1권에 불과합니다. 이마저 대학생들을 제외하면 수치가 더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 많은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해답은 고물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물상에서 중고책들 틈에 끼어 있는 새책을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도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G20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하는 독서량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