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그리고 칸초네" Pizza and Canzone: video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갈증 해결 위해 이탈리아로?

그녀는 가장 허름하고 가장 유명한 피자집 찾아 

마르게리타 피자를 신나게 손으로 뜯어 먹는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에서 주인공 리즈는 물질적 풍요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에서 역설적으로 ‘정신적 허기’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원인모를 이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무작정 세계 여기저기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는데, 우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며 어쩌면 가장 숭고한 갈망이기도 한, 먹는 것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의 한장면 출처 Lettuce Eat K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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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나 토리노의 으리번쩍한 미슐랭 스타급 레스톨랑을 주유하는 것은 아니다. 남부 캄파니아의 나폴리로 곧장 내려가, 거기서도 가장 허름하고 동시에 가장 유명한 피자집을 찾아 마르게리타 피자를 신나게 손으로 뜯어 먹는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 피자 장면)


영화 속 리즈가 피자를 먹는 곳은 지금도 나폴리 최고의 피자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다 미켈레>(L'Antica Pizzeria Da Michele)이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구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데, 어찌나 유명한지 나폴리에서 택시를 탄다면 별다른 말도 필요 없이 그냥 “핏쩨리아요! La Pizzeria”라고 한마디만 던지면 알아서 데려다준다. 1870년에 문을 열었으니 그 역사만 벌써 150여년에 이르는데, 지금은 그 매니악한 유명세 때문인지 도쿄와 런던에도 깔끔한 지점이 생겼다. 사실 다 미켈레의 피자는 나폴리 스타일 피자 가운데서도 가장 하드코어한 축에 속하는데, 우리로 치자면 을지로나 명동 어귀의 전설적인 국밥과 평양냉면집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나폴리 피자의 매력은 최고도의 신선한 재료를 예술처럼 빚어내는 장인의 기술과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즉흥성 그리고 특유의 단순함에서 나온다. 얇디 얇은 도우 위에 토마토 소스를 스윽하고 한번 바르고는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 몇 조각과 향긋한 허브 잎사귀 몇 개를 툭툭 던져 넣은 후 초고온의 화덕에서 돌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나무장작으로 지핀 400도가 넘는 화덕에서 도자기 굽듯 구워진 피자는 참나무향이 그윽하게 배어,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오묘한 맛을 내는 멋진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공정’이 은근 단순하다보니 외지 사람이나 연구하기 좋아하는 미식도시 출신들이 나폴리 피자의 오리지낼러티를 넘보기 시작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자란 산 마르차노 토마토’는 어쨌거나 힘겹게라도 구할 수 있다. ‘버팔로 물소젖으로 만든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 또한 마찬가지다. ‘신선하게 짜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서울에서도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왜, 이 최고의 재료를 모두 동원하고도 나폴리 구시가지 골목들의 찌그러진 피잣집에서 구워내는 그 피자 맛이 나지 않을까? 왜? 


하루에 수백 판의 피자를 현란하게 구워내는 전문 장인들, 즉 피자이올로(pizzaiolo)의 손맛 때문일까? 아니면 재료에 무슨 비밀이 있는걸까? 어떤 사람은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간 나폴리 지역 특유의 경수가 그 피자맛의 비밀이라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폴리 가게들의 전통 참나무 화덕에서 그 숨은 비법의 일단을 찾아내기도 한다. 사람들이 매년 다 빈치 <모나리자> 미소의 비밀을 이래저래 탐구하고 찾아보듯, 나폴리 피자에 대한 우리의 탐구 또한 도대체가 그칠 줄을 모른다. 


(나폴리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피자는 20세기 초 신대륙 이민 열풍을 타고 미국에도 전해졌고, 지금은 전 세계인들이 제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즐기는 ‘지구촌의 먹거리’가 되었다. 사진은 오소독스한 정통 나폴리 스타일의 마르게리타 피자)


피자는 유달리 사람들 간의 소통과 유대를 강조하는 인간적인 음식이다. 격식을 차린 레스토랑에서는 취급하지 않고 오직 거리의 스낵바 같은 곳에서 먹는 일종의 간식이다. 그러니 나폴리를 찾았다가 콜라에 곁들여 우걱우걱 피자를 삼키는 그들의 모습에 너무 실망하시지 말라. 피자는 그런 ‘길거리 정신’ 때문에 지금의 유명세를 얻었으니 말이다. 


나폴리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단골 피자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떨 때는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라도 일부러 피자집을 찾기도 한다고 한다. 뜨거운 나폴리의 태양 아래서 갖 구워낸 뜨끈하고 신선한 피자 한 조각과 옛날식의 묵직한 병 콜라 하나를 손에 쥐고 있노라면 세상사의 모든 근심걱정 따위는 금새라도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단다. 사실 여기에 달달한 나폴리 칸초네 한 곡만 곁들인다면 실로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마리오 델 모나코 출처 네이버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이탈리아 중북부 출신의 테너들이 

부르는 칸초네가 귀족적이라면.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나폴리 칸초네에서는 남부 이탈리아 

고유의 친근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폴리 칸초네는 클라우디오 빌라, 세르지오 부르니 등 대중가수에서부터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등 성악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불러온 노래다. 그러나 역시나 최고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시칠리아 태생의 이 테너는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 탓에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 살길을 찾아 밀라노로 올라온 그가 간신히 오페라 가수의 뜻을 굳히던 그 순간 2차 대전이 발발한다. 청년 디 스테파노도 곧 군대로 끌려가지만,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고는 스위스로 탈출한다. 1944년부터 스위스 로잔느의 한 라디오 방송국은 이 싱싱한 미성의 테너가 부르는 노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그것도 고국을 등진 탈영병이자 망명자 테너가 노래했던 지극히 아름다운 남부 이탈리아의 칸초네. 그 망향의 노랫가락은 너무도 싱싱하고 구김 없는 미성이어서 오히려 서글픈 멜랑콜리를 느끼게 했다. 


(디 카푸아 <나의 태양 O sole mio>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 1945년 6월 스위스 로잔 라디오 레코딩)


디 스테파노의 나폴리 칸초네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린다. 그의 노래 앞에 테너나 오페라 가수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따로 붙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가객(歌客), 그야말로 노래 하나로 장르와 음악의 경계를 뛰어넘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 디 스테파노였다. 디 스테파노의 달콤하고 아련한 칸초네와 함께 우리 또한 여름 지중해의 한없는 낭만을 꿈꿔본다.


(디 카푸아 <마리아 마리 Maria Mari>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 ‘오 솔레 미오’로 유명한 디 카푸아가 쓴 

달콤한 나폴리 칸초네로, 피에디 그로타 칸초네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이다. 마리아라는 여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달디 단 선율과 치렁거리는 특유의 나폴리 방언으로 표현한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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