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위에 개 없고, 개 아래 개 없다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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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위에 개 없고, 개 아래 개 없다

2017.07.10

번칠이를 떠나보낸 후 번칠이 엄마는 며칠 동안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자식을 앞세워 보내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번칠이를 떠나보낸 심정이 꼭 그랬습니다. 그 귀여운 재롱이 눈에 아리삼삼해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평소 아내 몰래 보신탕을 즐기던 번칠이 아빠도 마침내 보신탕 금식을 선언했습니다. 번칠이와의 따뜻한 교감을 가져 본 그로서는 그것과의 애처로운 이별 후에 또다시 보신탕을 먹는다는 건 차마 못 할 짓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번칠이네 사정과는 상관없이 또 수난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 서로를 의지하고 동반해 살아온 견공. 어쩌다가 보양 식재로 인기를 모으며 매년 삼복더위 속에 가장 믿어 마지않던 인간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제 족속보다 인간을 더 따르는 걸 보면 안쓰러운 생각마저 듭니다.

12일이 초복입니다. 22일이 중복입니다. 8월 11일이 말복입니다.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며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숫돌에 칼을 갈며 대목을 고대해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길고도 끔찍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말복이 달을 넘겨 8월 초순까지 삼복이 이어지는 월복(越伏)입니다. 위험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처음 생명을 얻은 이후 인간은 끊임없는 위험과 공포 속에서 살았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대자연의 변화, 미지의 생물체와의 끊임없는 접촉에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런 가운데 운명 같은 교감을 통해 인간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 개를 얻었습니다. 개와 인간이 동거하게 되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페르시아의 베르트 동굴에 있다고 합니다. BC 9500년경 기록입니다. 이후로 사람과 개는 서로를 지키고 돌보고 의지하며 공생해온 것입니다. 오늘도 개는 사람의 집을 지키고 가축을 돌봅니다. 재난 속의 사람을 구조하고 마약을 찾아냅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을 인도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그렇게 인간과의 깊은 유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엔 개를 사랑하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와 육친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누는 사람들과 개만 보면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입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개 등에 꽃무늬 포대기를 씌우거나 제 앞가슴에 큰 주머니를 매달아 개를 안고 다니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멀쩡하게 뛰어다니는 개를 보고도 된장을 바르느니 어쩌니 하며 군침을 삼키는 아저씨도 있습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서울 강남에서는 개들이 수십만 원씩 비용을 들여 호사스러운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따라 몸 관리한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과 능력이 넘치는 주인 덕에 스파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낮잠을 잔 후 건강검진과 미용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개가 죽으면 고급 오동나무 관에 입관해 화장한 후 유골을 집이나 납골당에 보관하는 가정도 있다고 합니다. 수명이 다했거나 병으로 죽은 개 때문에 며칠 몇 달을 상심하는 사람, 거기에 심심한 위로와 조의를 보내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홀로 집을 지키는 개의 외로움을 달래고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개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을 방송하는 개 전용 유료 TV가 생겨난 지도 꽤 됐습니다. 그러니 개 발톱에다 새빨간 매니큐어, 아니 페디큐어를 바르고 덧신을 신기고 머리에 리본을 매다는 것쯤은 사실 사치도 아닙니다.

애완견으로 반려견으로 인간보다 나은 삶을 사는 개들도 있지만 또 한편 오로지 인간 혓바닥의 미혹을 위해 생지옥 같은 삶을 사는 개들도 많습니다. 전국 곳곳에는 닭장같이 좁은 칸막이 속에 온갖 질병과 함께 갇혀 사육되는 개들이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비위생적인 옥 속에서 사투하던 개들 가운데 연간 대략 300만 마리가 인간들에게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특히 한여름 뜨거운 복날 많은 개들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합니다. 

성남 모란시장에서는 백주 숱한 행인이 보는 가운데 개를 도살하고 화염분출기로 털을 태우고 피가 흐르는 살을 베어내고 땅바닥에 쏟아지는 내장을 주워 담는 참혹한 광경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보신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은 광경입니다. 복중에는 전국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살아 있는 개를 밧줄로 나무에 매달아 몽둥이로 때리고 불로 그슬어 잡는 잔혹한 짓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일용양식으로 키우는 가축을 마치 가족처럼 대하는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이 본다면 기겁할 일입니다. 그들은 정말 양식으로 필요한 때에도 단숨에 가축의 급소를 찔러 고통을 최대한 없애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동물보호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동물의 생명 보호, 학대 방지 등 적정한 관리와 복지 증진, 그리고 생명 존중 등의 국민 정서 함양을 위해 1991년 제정한 법입니다. 반려동물을 동반하고 외출할 때에는 소유자의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이 기록된 인식표를 부착해야 합니다. 목줄 등 안전 조치도 해야 합니다. 배설물은 즉시 치워야 합니다. 또 동물을 유기해서는 안 되고 이를 붙잡아 판매하거나 죽여서도 안 됩니다. 동물을 죽이고 상해를 입히거나 신체를 손상하는 등의 학대행위는 모두 위법입니다. 이렇게 멀쩡하게 법이 만들어져 있어도 이를 지키려는 행정 당국이나 일반 시민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개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야만인이라는 공격을 받곤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우리 전통의 식습관, 식문화에 대한 무지라고. 애완견과 식육견은 처음부터 다른 것이라고. 

인간이 오로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학대받고 고통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똑같은 인간이 노예로 팔려가고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폭행당하고, 그래서 생긴 자식까지도 노예로 팔려가는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개는 처음부터 평등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애완견, 반려견과 식육견의 황당한 차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생김새? 털 색깔? 고기 근수? 따지고 보면 먹지 못할 개도 따로 없고, 먹어야 할 개도 따로 없습니다. 보신탕이니 사철탕이니 단고기니 하는 미명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의 재료로 공급되는 개의 사육장을 들여다보면 그 품종에 어떤 제한도 예외도 없음을 확연히 알게 됩니다. 

정부가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찾아올 외국 선수단, 관광객을 의식해 개의 식육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30년 전 서울 하계 올림픽 때도 논의되었던 일입니다. 더 이상 외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저울질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활여건도 음식문화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개가 이제까지 우리 인간에게 기여해온 공을 돌이켜본다면, 지금도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이웃을 생각한다면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인간과 개의 돈독한 유대, 건전한 관계를 되살리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게 지성과 교양을 갖춘 인간이 취할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자기 양심을 버리고 만들어낸 반려와 식육이라는 억지 이분법과 모순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도 차별 없는 ‘만견(萬犬) 평등’의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바둑이도 누렁이도 철수와 영희와 평화롭게 함께 뛰놀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푸들이든 몰티즈든 시추든 치와와든 스패니얼이든 테리어든 비글이든 슈나우저든 리트리버든 차우차우든 불도그든 퍼그든 진돗개든 풍산개든 삽살개든 아키타든 달마시안이든 콜리든 셰퍼드든 세터든 포인터든 허스키든 말라뮤트든 차별받지 않고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하게 자라 건강한 동반관계로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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