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에 걸쳐 이룩한 원전 기술, 말한마디에 거품되나?


한국史 50년 과학기술 집약, 

한국형원전(APR1400) 이대로 끝?

59년 첫 원자력연구소 개설, 

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원전 불모지에서 6대 수출국으로


   대한민국에서 ‘제3의 불’인 원자력이 태동한 것은 6·25 전쟁의 상처가 미처 아물지도 않던 때였다.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지만, 당시에는 기와집보다 초가집이 많던 시절이었다. 집집 마다 전깃불 대신 촛불 하나에 의지해 긴 밤을 나는 것이 당연했다. 


27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현장. 왼쪽은 신고리 원전 3·4호기.정부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을 벌이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사진=뉴스1

edited by kcontents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발전 강국의 씨앗은 어떻게 한반도에 심어졌을까. 전후 수습이 한창이던 1956년 7월 백발의 미국인 한 명이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나무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열어 이 대통령에게 석탄과 우라늄을 보여줬다. 


그는 “우라늄 1g(그램)이면 석탄 3t(톤)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 극복과 국가적 경쟁력 확보에 고심하던 이 대통령은 미국인의 말에 무릎을 쳤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과학고문인 워커 시슬러 에디슨전기협회 회장이었다. 




이 대통령이 원자력의 성공 여부에 확신을 갖지 못하던 때에 시슬러 회장의 한 마디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시슬러 회장은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며 “한국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캐낼 수 있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 조언했다. 


이 대통령은 시슬러 회장의 말에 따라 원자력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원자력 이용을 위한 행정조치와 법적 기반 마련에 이어 1959년에는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실험용 원자로 착공에 들어갔다. 일찌감치 미국과 영국 등 원전 선진국으로 국비 유학을 보냈던 이들이 돌아와 힘을 보탰다. 


이 실험용 원자로가 가동된 것은 3년 뒤인 1962년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후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원전발전추진대책위원회를 설치하며 이승만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에너지와 산업의 미래를 원자력발전소에서 찾았다. 1971년 미국 정부의 차관과 기술을 지원받아 고리 1호기를 착공했다. 당시는 포항제철 공장의 기둥만 세워질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 총공사비만 3억달러로 당시 1년 국가 예산의 4분의 1, 경부고속도로를 4개 건설할 수 있는 규모로 원전 공사를 한다고 하니, 전국 각지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하지만 착공 7년 만인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는 오일쇼크를 넘은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마르지 않는 유전’처럼 값싼 양질의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하면서 현재 우리 경제를 뒷받침 하고 있는 철강, 조선, 석유화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100% 외국 기술로 만든 고리 1호기를 뒤로 하고, 1980년대에는 원전 기술 국산화에 매진했다. 박사급 인력이 미국에 파견돼 밤낮으로 노력한 결과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을 개발해 12기를 건설하고, 3세대 원자로인 APR1400을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특히 APR1400은 국내 원전 역사와 기술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1992년부터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해 10년간 산·학·연에서 2300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개발비만 총 2350억원이 들어갔다. 발전용량과 설계수명은 늘리고, 발전원가와 위험성은 줄였다. 


이 같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APR1400 4기를 수출했다. 원전 불모지에서 50년 만에 원전을 독자 기술로 개발해 수출하는 나라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원전을 수출하는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캐나다에 이어 6번째로 이름을 올린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이룩한 성과를 부정하는 최근의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과 함께 신고리 5·6호기가 공론화 절차에 들어가며 공사가 잠정 중단됐다. 노후 원전의 폐쇄와 맞물려 신한울 3·4호기 등 계획된 원전의 무산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의 명맥이 끊길 위기다.




수출 전망도 밝지 못하다. 국내서 원전을 짓지 않으면 수출을 위한 명분이 약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영국 뉴젠(NuGen) 원전 사업 진출을 비롯해 최근 원전 업계의 수출 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국가적으로 육성해 왔던 원자력 전문 인재는 갈 곳을 잃었다. 국내에 원자력 관련 학과 및 전공이 개설된 대학은 총 16곳으로, 지난해 졸업생(학·석·박사)만 600명에 달한다. 이들은 급속히 냉각된 원전 산업의 분위기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원전 관련 전문가는 “원자력은 과학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자꾸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그간 원전으로 인해 이룩한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마저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이동우 기자

케이콘텐츠

댓글()